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꿈에서도 민족해방을 염원했던 시인은 광복의 그날을 보지 못한 채 1936년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 우리나라가 당한 고통과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픔의 역사가 마음과 기억에서 멀어지는 듯한 생각이 들어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면서 많은 부분이 잊히기도 했다. 

필자의 큰 외삼촌이 일본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당해 끌려갔다. 전쟁의 동원 수단으로 낯선 땅에 갔지만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아들이 돌아올까 기다리는 마음으로 밤중에도 대문을 열어놓고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이사하면 아들이 집 못 찾을세라 평생 그 집을 지켰다. 결국 돌아오지도 못했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기다림 속에 세상을 떠났다. 징용으로 끌려간 청년들의 이름도 생사도 알 길이 없다.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 중 일부가 살아 돌아와 용감하게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증언하며 피를 토하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도 세월과 함께 잦아들고 있다. 

돌이켜 보면 광무9년인 1905년 11월17일 일본의 강압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됐다.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 장악을 위해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우리의 국권을 빼앗고 한국에 대해 식민지에 준하는 통치와 수탈을 자행했다. 이것은 1910년 한일병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결국 1910년(경술년) 8월29일에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병합되어 한일병합(韓日倂合) 또는 경술국치(庚戌國恥)로서 이 조약은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일본령이 됐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한 사건이다. 

1904년 한일의정서를 시작으로 1905년에 을사늑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행정권과 입법권 박탈 및 군대 해산, 1909년에는 기유각서로 사법권을 박탈, 이듬해 6월에는 한일약정각서로 경찰권까지 박탈했다. 경술국치 당시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만 독립국이었을 뿐,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의 상태였으며 결국 순종 황제의 조칙이 발표돼 8월29일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고 국어는 일본어가 됐으며 조선인은 신분을 잃었다. 

우리나라는 일본 강제합병으로 36년 동안 자유를 빼앗긴 채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고통을 당했고 나라도 인권도 주권도 빼앗기고 종살이로 전락하게 된 세월이었다. 이런 치욕의 강제 병합으로 일본은 우리의 너무나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우리의 문화, 심지어 이름·성까지 빼앗아갔다. 당파싸움과 정치싸움만 일삼던 이조는 나라를 부강하게도 못했으며 백성을 지키지도 못했다.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 과거 아픈 역사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미래를 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도 과거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8월15일은 광복(光復) 78주년 기념일이다. 나라를 빼앗겼다가 주권을 다시 찾은 날이다. 빛이 회복됐다고 해서 광복(光復)이다. 자신의 생일을 잊을 수 없는 것 같이 광복절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재현해 놓은 '야드 바솀'이란 역사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름(Vashem)을 기억(Yad)'이라는 뜻의 야드 바솀(Yad vashem)을 지금도 외친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잊지 말라는 의미다. 성경을 보면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신 24:22)라는 말씀이 있다. '종' 됐던 것을 계속 기억하면서 역사의식으로 승화시키라는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복이라는 재앙이 반드시 임한다. 기억하자! 기억하자!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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