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혼인문화는 남자가 장인과 장모의 집에 간다고 해서 '장가(丈家)간다'이다. 이른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다. 여자는 결혼해도 자기 집에서 살았다. 이보다 더 오랜 전통은 고구려의 '데릴사위제'이다. 한자로는 서옥제(壻屋制)라 했다. 사위가 오랫동안 처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종의 봉사혼(奉仕婚)으로 '머슴애'란 말이 여기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다'이라는 말도 여기서 출발한다.

1935년 잡지'조광(朝光)'에 발표된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은 이런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봉필이라는 마름의 딸 점순이와 혼인하기 위하여 돈 한 푼 받지 않고 3년이 넘도록 머슴노릇을 한다. 그러나 장인은 점순이의 키를 핑계로 일만 시킨다. 그런 장인에게 반발하면서도 끝내 이용당하는 순박하고 어리숙한 주인공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계집의 원뜻은 혼인을 해도 제집에서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여자를 아우르는 총칭이다. '두시언해'에서도 아내를 두고 '늘근 겨지븐~'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러던 것이 대개 스무 살 미만의 시집가지 않은 여자를 일컫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여자를 낮잡아 부르는 말로 변질되었다.

1500년대에 이르러 '주자가례'에 따라 음이 양을 따르듯 여자는 혼인하면 남자의 집으로 가게 되는 친영(親迎)으로 변한다. '시집간다'는 말이 그때부터 생겨난다. 신랑조차 남의 편(남편)이 되고 마는 외로운 시집살이는 여인의 한으로 점철되었다. 시집살이가 정착된 조선후기에는 처가살이란 못난 남자들의 대명사가 되어 '보리쌀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는 속담까지 생겨났다.

지금은 어렸을 때 같이 자란 초등학교 동기나 가까운 고향사람들끼리는 '머슴애' '계집애'를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 말속에는 그저 다정하고 가까우며 내 살붙이 같은 찐득찐득한 체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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