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얼마 전에 외국인 친구가 거제도를 방문했다. 그 친구가 자동차가 없는 관계로 본이 아니게 내가 며칠 친구를 데리고 거제도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다. 거제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오랜만에 바람의 언덕에도 가고 학동몽돌해수욕장, 구조라, 흥남해수욕장까지 거의 모든 바닷가를 섭렵했다. 고맙게도 외국인 친구는 제주도보다도 거제도가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틈나는 대로 맛집과 핫플이라고 소문난 카페를 찾아다녔다. 요 몇 년 동안 거제도에 크고 유명한 카페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거제도에서 좀 이름 있는 곳은 다 다녀본 나도 깜짝 놀라게 되는 멋진 카페들이 여기저기 많았다.

그런데 내가 연식이 좀 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커피값이 밥값과 맞먹는다는 사실은 살짝 불편했다. 대부분의 카페의 커피 한 잔 가격은 카페 라떼를 기준으로 일,이천 원만 더 보태면 한 끼 밥값이다. 카페에서 파는 빵도 커피 가격을 훌쩍 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그렇게 된지 언젠데 인제서야 그게 불편하냐고 물으신다면 내가 아직도 촌티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주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하지 않은 가격이니 그리 생각하라고 지인이 핀잔을 주었는데 그러면서도 그녀는 거제도 어느 카페에 가면 한 잔에 오 만원 하는 커피도 있다면서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화를 내었다.

그래서 그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있기는 하냐 했더니 자기 아는 부유한 사람 중에도 매일 그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오는 사람이 있다했다. 그 커피 원두가 무슨 동물의 똥 커피라고 했다. 

헐, 커피 한잔에 오 만원이라니. 아무리 커피가 좋아도 그렇지 너무 비싸다. 그러면 이런 종류의 커피는 분명히 소비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도 그걸 마시러 가는 사람이 있다니 이건 분명히 ‘베블런 효과’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이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했을 때 그가 타겟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상류층 사람들이었지만 요즘은 상류층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이 현상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거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는 남들과는 다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커피 한 잔에 베블런 효과까지 들먹이는 것은 좀 그런 것 같지만 가격 대비 이것이 꼭 명품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커피가 일반적으로 누구나 다 마시는 기호 식품이다 보니 남들과 달리 더 고급스럽고 비싼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것도 일종의 베블런 효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베블런 효과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비싼 명품 가방 소비가 늘고, 외국 명품 브랜드 마케팅팀은 이미 한국인의 심리를 다 파악하여 자기들 올리고 싶은 대로 명품 가격을 수시로 올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명품 가방을 사게 되는 것이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나 오히려 가격이 오르면 이상하게 더 사고 싶고 먹고 싶어지는 심리는 분명히 자신도 모르는 과시욕이나 허영이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분명히 몸의 각 부분이 그 아픈 곳을 통증으로 나타내듯이 마음이 아프거나 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본인도 모르게 행동이나 말, 혹은 삶으로 마음의 통증을 드러낸다. 아픔을 가진 내가 살기 위해서다. 

오만원 짜리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다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여유 있으면 내 돈으로 내가 마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다만, 커피 가격이 너무 비싸지면 언젠가 거제도의 멋진 카페들이 이 가격을 따라 할까 두려운 것뿐이다. 누가 먼저 비싼 커피를 시작해서 맛있다고 소문나면 대부분 슬금슬금 그 가격을 따라 한다. 음식 값이나 커피 값이 내려갔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별로 없다.

이렇게 커피 값이 자꾸 오르면 커피를 매우 좋아하고 하루를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소시민인 나는 이러다 집에서 믹스커피만 마시게 되는 날이 속히 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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