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태 거제수필문학 회원
서용태 거제수필문학 회원

작은 존재, 극히 작은 존재로 살고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말이다. 138억년 전쯤, 우주 대폭발이 일어날 때 생긴 작은 점 하나가 지구다. 이다지도 큰 땅덩이가 우주에서는 작은 점으로 묘사된다면, 그 속에 사는 '나'라는 생명체는 먼지보다 미세한 존재가 틀림없다. 그러기에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현미경 같은 시력을 주지 않은 조물주에 감사하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대유행할 때, TV를 켜면 수시로 방영되던 '비말(飛沫)의 경고'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마스크 착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특수 카메라로 촬영한 이 영상을 보고 나면 잠시나마 입맛이 싹 가시고 만다. 사람들이 재채기할 때 공기중에 비산(飛散) 되는 비말을 영상으로 보고 나면 숨쉬기조차 힘들게 된다. 그 속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살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조물주가 인간에게 미세한 부분까지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줬다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을 것이 분명하다. 내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비말과 작은 먼지를 현미경처럼 볼 수 있는 시력의 소유자라면 아마도 하루를 살지 못하고 지레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리는 아닐성싶다.

그뿐이겠는가, 코로나바이러스며 독감 바이러스, 각종 박테리아가 눈에 보인다면 그만 자지러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인간에게 약한 시력을 준 조물주 덕분에 천수를 누리며 살 수 있어 감사한 것이다. 

내가 먼지보다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다. 내나이 열아홉에 공직에 입문했다. 신규공무원은 반드시 공무원교육원에서 4주 동안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당시 경상남도교육원이 부산 전포동에 있었다.

입교생에 대한 마지막 평가시험을 마친 날, 교육원의 교수들이 교육생 모두를 데리고 인근의 높지 않은 산으로 등산을 갔다. 부산의 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내가 느낀 비애가 있었다. 저 많은 건물중에 내 집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부산에는 연고가 없어 그렇다 치더라도, 시골 촌구석에서 사글세로 사는 신세였기에 한없이 비통함을 느꼈다.

그러다 화두 하나를 깨친 수행승처럼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바로 먼지와 같으니 슬퍼할 일도 부러워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내가 남긴 족적 이래야 먼지 위에 먼지 하나 얹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도, 흐르는 시냇물처럼 보이는 은하계의 희미한 별들도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는 작은 먼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그 먼지만큼이나 작은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 수십억만 명의 사람 중 하나가 '나'라는 존재 아니 더냐. 닐 암스트롱처럼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것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니다.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직장에 다녔고, 지구상에 집 한 채, 인구 둘을 늘려 놓은 게 전부다.  

나는 존엄한 존재인가, 겸손해야 할 존재인가.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는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 그 점 하나에서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는 초미세먼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지구상의 사람숫자로 보더라도 수십억 명의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고,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도 없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다. 오로지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이기에 존엄한 것이 아닐는지.

사유가 여기까지 미치면, 석가가 태어나자마자 외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존재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금세 생각이 바뀐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막 뒤섞인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라 한다. 번뇌를 물리치고 삼라만상에 자비를 베풀며 살라 한다. 흐르는 물처럼, 때로는 청산의 바람처럼, 뜬구름처럼 살라 한다. 어질게 덕으로 살라 한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내가 결정할 차례다.

우주의 작은 먼지보다 작은 존재이니 잘난 것도 없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다. 그저 극히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데 생각이 모여진다. 그러다가 천명이 다하면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빈손으로 떠나는 존재다. 그저 겸손하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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