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우리 삶의 잠언과도 같다. 농부 바흠은 넓은 땅을 거저나 다름없이 판다는 유목민을 찾아간다. 거래조건은 간단했다. 해가 뜨면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시작지점으로 돌아오면 그 안의 땅을 모두 주겠다는 것이었다. 농부는 더 많은 토지를 차지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뛰고 걸었든지 해가 지기 전에 겨우 도착은 했지만, 피를 토하고 즉사한다. 소설은 '농부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그가 묻힌 3아르신(2m) 크기 만큼이었다'는 해설과 함께 끝난다.

사람의 욕심은 얼마 만큼일까? 욕심의 상징이 주머니다. 우리나라 한복에는 전통적으로 주머니가 없다. 두루마기의 경우 옆에 트인 공간이 있긴 하지만 그건 손을 감추기 위한 공간일 뿐 어떤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막힌 공간이 아니다. 물건 따위는 귀주머니에 넣어 끈으로 한복 허리춤에 차고 다니거나 손에 들고 다녔다. 전에 할머니가 손자에게 용돈을 주실 때 보면 주섬주섬 치마를 걷어 올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줌치(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셨다.

남자들의 한복 조끼에는 주머니가 있지 않으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 고유의 옷이 아니고 조선 말기 개화기 때 전래한 서양옷을 본뜬 개량복이다.

만주지방의 호(胡:흉노)족들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옷을 입었다. 이동이 잦은 그들에게는 필요한 소도구를 넣어 다닐 여러 개의 주머니가 필요했다. 호족들의 옷에 주렁주렁 달린 주머니를 보고 '호(胡)+주머니'라 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라는 말처럼 '욕심주머니'를 함의한다. 참고로 우리말 접두사에 호(胡)자가 붙은 물건은 중국을 통해서 전래했음을 뜻한다. 호떡·호두·호밀·호(후)추·호적(태평소) 등이 있다.

스님의 가사에는 호주머니가 없고, 우리가 죽어 입는 수의(壽衣)에도 호주머니가 없다. 호주머니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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