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영 시인
김무영 시인

6월이 되면 옥포대첩과 6.25가 떠오른다. 거제지역에서 이 두 전쟁은 시대와 내용은 다르지만 세계적인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상통하는 면이 있다.

옥포대첩은 우리나라 해전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룬 해전이요, 6.25는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쟁포로 수용이 그것이다.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처음으로 왜구를 무찔러 우리도 이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 향후 한산대첩·명랑해전 등 왜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또 옥포대첩은 당시 열악한 아군에 지역민들이 물과 식량을 보급하고 심지어 자갈 같은 무기가 될 만한 것들도 날라 함께 했다는 점이다. 이는 순전히 이순신 장군의 지도력에 감동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그 뜻을 더하고 있다.

그래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만찬자리에서 승리를 이끈 일본 장수 도고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수라는 말에 잔을 들고 일어나서 '나는 영국 장수 넬슨보다 위대하지, 그러나 조선 장수 이순신이 더 위대하다.' 이순신을 외치며 경례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도고는 전쟁기념비를 가조도 옆 취도에 세우기도 했다.

거제에서 6.25하면 떠오르는 포로수용소가 있다. 당시 17만3000명이라는 포로를 수용해 이 부분 기네스에 오른 대기록이다. 포로수용소 내에서 친공·반공으로 나눠 또 하나의 전쟁을 치러 친공세력이 도드 사령관을 납치한 일도 있다. 수용소에서 반공 진영에 섰던 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불안한 삶을 살았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포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뇌를 겪었다.

6.25 또 하나의 사건은 장진호 전투에서 시작한 흥남철수작전이다. 당시 화물선인 메르디스빅토리호에 싣고 있던 화물을 버리고 피란민을 승선하게 한 알몬드 장군이다. 1950년 크리스마스날 새벽에 장승포 외항에 도착한 일이다. 정원의 18배인 1만4000여명의 포로를 싣고 2박3일을 순항한 기록이다.

이처럼 전쟁에 관한 세계적 기록을 가지고 있는 곳이 흔치 않다. 타 지자체에서는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연관된 일을 찾아내어 캐릭터로 만들어 관광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옥포해전이 위대한 전투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홍보 부족일지도 모른다.

일본 장수 도고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순신 장군의 전략에 의해 승리했다는 표적으로 일본 해군사관학교 정문에 이순신 사당을 건립해 일본해군사관생도들이 등·하교시 경례를 하며 이순신 장군의 뜻을 기렸다는 것이다. 그 정신이 가장 깊은 거제해역에 세운 이순신 장군의 얼도 일본 장수가 세웠다고 해서 없애려고 했던 일도 기억한다.

거제지역에서 일어나는 역사적인 일들을 제대로 연구해 알리지 못하고 일부 주장에 끌려가고 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 장수들이 옥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이어가고 있다. 이는 위대한 승리를 이룬 옥포대첩을 기리는 의미다. 옥포대첩기념공원도 자료나 시설 등 처음 조성할 때 그대로다. 옥포대첩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올해도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거제옥포해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서 말이다.

포로수용소는 더욱 그렇다. 반공포로들에 대해 한 번이라도 그들의 아픔을 알려고 했던가. 반공포로기념비를 세우고 특별법이라도 제정해 그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인가. 전국 학생·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포로체험 같은 프로그램도 가능할 것이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용소 잔재는 또 어떤가. 곧 사라질 것이 뻔한데 손 놓고 있다.

메르디스 빅토리에 오른 1만4000명의 피난민들을 거제인들은 아무 대가 없이 가족처럼 보살폈다.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이제 부모세대가 돼 그 기억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했던가.

이들의 자손과 자손이 이어지면서 거제를 기억하고 찾게 하는 일이 곧 거제를 살리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전쟁의 역사가 전쟁을 넘어 문화가 되고 관광이 되고 평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