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장에서 술 한 잔 하고 돼지고기를 사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지. 늦은 밤인데 웬 사내가 나타나 고기를 내놓으라는 거야. 안 된다니까 그럼 씨름해서 이긴 사람이 갖자는 거야. 그래서 밤새 씨름을 해 그놈을 쓰러뜨리고 나무에 묶어뒀지. 다음날 가보니 나무에 피 묻은 빗자루가 묶여 있더라고."

밤에 도깨비를 만나 씨름한 이야기는 전국 어디서나 채집되고 있다. 씨름에 이기고 나무에 묶는 것도 일반적이고, 아침에 가보니 피 묻은 빗자루였다는 것도 공통된 경험담이다. 또 하나 도깨비하고 씨름할 때 왼쪽다리를 걸어 넘겨야 이긴다는 것이다. 왼쪽다리는 '헛다리'라서 도깨비를 한자로 독각귀(獨脚鬼)라 한다.

도깨비의 이미지는 머리에 뿔·원시인 같은 가죽옷·징이 박힌 방망이인데 이런 이미지는 일본 도깨비의 영향과 동화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한국 전래민담 속의 도깨비 외형은 평범한 사람, 성인 남성으로 묘사된다. 드물게는 여자 도깨비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밤에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웬 처자가 나타나 "마을까지 태워다 줘요"해서 여자를 태우고 마을까지 와서 돌아보니 여자는 없고 몽당 빗자루만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밤에 누가 부르면 세 번 부르고 나서 대답하라고 했다. 바깥에서 초인종을 눌러 내다봤더니 피 묻은 빗자루가 덩그러니 있었다는 괴담도 있다. 시골에서는 오래된 빗자루는 세워두지 않았고 반드시 불에 태워버렸다. 여자들이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빗자루를 깔고 앉으면 어른들에게 혼이 났다. 월경혈이 묻은 빗자루가 도깨비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도깨비들이 참 많았다. 그 많던 도깨비들이 다 어디 갔을까? 더러는 전깃불이 들어오면서부터 떠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수 빗자루가 플라스틱 빗자루로 바뀌고, 전기청소기가 보급되면서 빗자루와 함께 도깨비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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