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거제경실련 정책위원장
고영주 거제경실련 정책위원장

'IPCC'라는 국제 과학자 조직이 있다. 영문으로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이니 보통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로 번역한다.

역사상 유례없이 가장 크게 주목받는 과학자들의 모임이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진 집단이다. 

이 IPCC가 내놓는 보고서는 인류의 향후 행동지침이 되기에 이르렀다. IPCC는 1988년에 결성된 이후로 올해 3월까지 6차례에 걸쳐 보고서를 발표했고, 특히 6차 보고서는 기후재난이 예상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 IPCC가 무척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아는가? 'IPCC가 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넘기고,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이렇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가장 크게 알린 사건은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과 제임스 한센(James Hansen)의 미국 의회 청문회였다. 

칼 세이건은 1985년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극도로 중요한 문제를 떠넘기고 있다"고 얘기했다. 나사(NASA) 소속이었던 제임스 한센은 1988년의 청문회에서 "인간의 활동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IPCC는 그로부터 무려 35년씩이나 지난 2022년에야 "기후변화는 인간의 활동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했다. 그 인간의 활동이란 온실가스(이산화탄소·메탄 등)를 내뿜는 산업시스템과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이 보수적인 과학자 집단이 아마존의 삼림을 파괴하는 행위를 당장 멈추라고 하고 숲을 가꾸라고 말하며, 에너지 시스템을 당장 바꾸라고 경고(권고가 아니다)한다. 거기에다 '탈탄소'를 넘어 '탈성장'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소위 '경제 좀 안다는 사람들'은 '탈성장'이란 선언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지 안다. 

그럼에도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산업계 거물들에게 휘둘려온 IPCC가 이런 얘기를 거침없이 내뱉다니,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산업시스템과 삶의 방식·세계관을 바꾸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담보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장면을 바꿔 거제섬으로 눈을 돌려보자. 이와 관련한 2023년 거제시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노자산 골프장 문제다. 노자산 골프장은 거제남부관광단지 조성 사업의 핵심으로 무려 100만 평에 27홀 규모로 계획되었다 한다.

그런데 노자산 골프장 환경영향평가서가 거짓·부실로 작성돼 관련 업체와 관계자들이 수사 의뢰되고 기소돼 현재 재판 중이다. 기소 이유는 생태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참여했다고 서류를 조작한 혐의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판단하든, 골프장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행위들은 멈춰져야 하고, 재판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법치국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다. 이를 무시한 채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꾀하는 행위는 명백히 탈법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필자는, 멸종위기종의 종류나 생태·등급 등은 잘 알지 못할뿐더러 자연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이나 감성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이런 면에선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관료들·개발업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생물이 멸종될 때 생태계의 균형이 어찌 파괴되는지,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보수적이기 짝이 없는 IPCC가 숲을 더 많이 가꾸고 더 많이 보존하라고 할 때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한다.

인류 전체가 '끓는 물 속의 개구리(boiling frog)'가 돼가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떤 악당 개구리는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며 불을 더 지피라 하고, 슬기로운 사람 호모 사피엔스는 숲을 지키자고 한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 편이다. 그래야 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받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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