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때죽나무 하얀 꽃이 숲속 냇물에 돛단배처럼 흐른다. 큰 꽃이 아니고 화려하지도 않고 그냥 하얗게 떠가는 꽃잎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들떠 보인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기만 한다. 그럴 수밖에. 아름다운 모습 앞에서는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때죽나무 꽃 떨어지면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봄, 봄 하던 소란과 축제가 끝나가고 있다. 자연을 경외하는 이유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오류에 대해서는 엄중하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만큼 자신의 오류에 대해 관대한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선생님에게, 이웃에게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핑계가 인정보다 앞서고 정부나 단체는 정책 혼선에 대해 솔직한 인정과 대책보다는 대변인의 입장발표가 먼저다. 핑계가 실수에 대한 인정과 대책을 덮어씌우는 동안 피해자는 더욱 아파지고 헤어나기 힘든 상처를 입는다. 때로는 핑계나 대책이 너무 그럴싸하여 반박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기도 한다. 각자의 입장으로 각자의 말만 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즐겨야 할 축제는 사라진 봄처럼 이미 끝나고 때죽나무 꽃잎같이 새로운 상황을 데리고 나타난다. 살다 보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역시 그 상식도 각자 본인들의 입장이고 모든 사람의 입장을 갈아 넣은 상식 통이 아니니 상식이 상식이 아닌 세상이다.

얼마 전 한 단체에서 시민을 위한 유명강사 초청 특강을 준비했다. 특강 계획과 준비는 이미 서너 달 전부터 이뤄졌고 강사 섭외도 2월 말에 이미 이루어진 상태였다. 내일이 행사일이면 오늘 오후에 특강을 취소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유는 강사의 정치적 이념이 한쪽에 치우쳐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강은 취소됐고 아무것도 모르고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은 되돌아갔다. 누구는 아쉬움을, 누구는 의문을, 또 누구는 항의했고, 주관한 단체는 사태를 해결하기 버거워했다.

이 사건의 개체군은 다섯 개다. 특강을 준비한 단체, 특별한 이력이 있는 강사, 행사를 주최하는 기관, 그리고 콘텐츠, 마지막으로 특강을 기대한 시민들이다. 특강을 준비한 단체의 입장은 강사의 특별한 정치적 이력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하는 기관은 편중된 정치적 이력이 있는 강사를 시민 대상 강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당사자인 강사는 특강이 취소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시민들은 더 아쉬워했고 특강 취소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제 남은 것은 특강을 하게 만든 원인, 콘텐츠다. 콘텐츠는 끝까지 말이 없다. 그냥 세월과 함께 사라져 갈 뿐이다. 한 가지의 사건에 각자의 입장만 남긴 체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적어도 외관상 보기에는 그렇다. 그렇다고 각자의 입장이 서면 사태는 모두 끝난 것일까?

각자의 입장만 남았고 피해자인 시민과 콘텐츠에 대한 대책은 없다. 주관 단체가 강연장을 찾은 시민에게 죄송하다는 인사 정도는 했겠지만, 모두 침묵하고 있다. 각자의 입장을 이미 알렸고 그 거대한 입장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시민과 콘텐츠는 어쩔 것인가.

어떤 행사를 계획할 때 사업의 목적을 먼저 구상하고 밝히는데 목적의 서두에 두는 것이 시민을 위로하고 풍부한 문화생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거나, 콘텐츠를 기념하거나 또 알리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시민과 콘텐츠는 행사의 목적이고 대상이었지만, 다른 관계 개체에 의해 일방적인 피해를 감내해야 할 때가 있다.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나 주최하는 기관은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도 기념하는 행사와 축제는 많고 시민들이 경험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들이다. 각자의 입장이 문화 주변에 돌고 도는 동안 그 피해자는 콘텐츠와 시민이다. 사실은 이들이 주인공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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