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할머니 한 분이 진료실로 들어오신 건 오후 세 시를 막 넘어선 시간이었다. 분홍색 꽃무늬가 새겨진 화사한 투피스에 멋들어진 은테 안경까지 걸친 할머니를 보자 나이가 궁금해졌다. 

90세.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용케도 견뎌냈을 할머니의 얼굴은 나이답게 주름이 져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웃어 보이지 않아도 입가에 흐르는 잔잔한 미소가 할머니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대변도 잘 안 나오고 변에서 피가 나와요.” 

나는 다시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주름 속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최근에 살이 빠졌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어머니, 요즘에 체중이 좀 빠지셨어요?” 
“조금 빠진 것도 같고.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요.”

대장 내시경을 하자고 얘기해야 하는 데 90이라는 숫자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대장 내시경을 준비하기 위해 먹어야 할 전 처치 약과 커다란 생수 두 통을 할머니가 드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장을 비우지 않은 상태에서 직장 부위만 간단히 보기로 했다. 할머니의 증상만으로도 떠오르는 병이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항문을 통과하자 직장 입구에 커다란 암 덩어리가 보였다. 조직을 검사하지 않고도 직장암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할머니가 내 앞에 앉았다. 들어올 때와 달리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내 얼굴을 본 할머니는 이미 체념한 듯했다. 

보호자를 찾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호자에게 설명해야 하는데요.”
 “원장님, 아들이 둘 있긴 한데 하나는 부산에 있고 하나는 서울에 있어요. 그냥 저한테 얘기하시면 돼요.” 

난감했다. 아무리 연세가 많으시다고 해도 이런 경우에는 보호자와 먼저 상의해야 한다. 

“둘 다 형편이 만만치 않아요. 연락하면 걱정할 거고 돈도 쓸 텐데.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나는 간호사를 불러 접수할 때 적은 보호자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그 번호도 진짜가 아니에요. 그냥 아무 번호나 적었어요.” 

할머니는 병원에 오기 전부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이 무척 고집스러워 보였다. 주소는 맞을 테니 다른 방도를 취하면 못 알아낼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저 정도의 직장암이라면 큰 수술을 해야 하고 항암 치료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병원에서도 저 연세라면 암 치료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검사를 하고 난 뒤에 고작 변비약이나 진통제를 처방해 주는 것이 그들이 할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의사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다. 나중에라도 보호자들이 찾아와 항의한다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에 나는 지고 말았다. 

“어머니, 그럼 변비약이랑 혹 아프시면 드시게 진통제를 좀 드릴게요.”

할머니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진료실을 나갔다. 할머니의 주소를 확인해 보았다. 마침 다음날 같은 동네에서 오신 다른 할머니 한 분께 슬쩍 아무개 할머니를 아시냐고 물어보았다. 

“잘 알죠. 멋쟁이로 소문났어요. 그 할망구 한 번도 대충 입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아들 둘이 다 도시에서 잘 산다고 하던데. 그런데 한 번도 고향에 내려오는 건 못 봤어요.”

할머니는 매달 한 번씩 약을 타러 병원에 오셨다. 항상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옷을 입으신 상태로 나를 만나셨다. 특별한 약을 드릴 건 없었다. 대변이 부드럽게 나오도록 도와주는 약뿐이었다. 진통제는 아프지 않아 드시지 않고 쌓아 뒀다고 했다. 나는 왜 그렇게 늘 차려입고 병원에 오시는지 물었다. 

“내가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면 사람들은 아들이 돈도 안 보내 줘서 옷 살 돈이 없어 그러는 줄로 알 거 아니야.”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의 모습을 보지 못한 건 병을 진단하고 나서 2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그제야 자식들이 알고 서울로 모셔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비슷한 차림의 할머니가 진료실로 들어오면 문득 그 할머니가 생각나곤 한다. 만약 내가 억지로라도 아들에게 할머니의 병세를 알렸다면 돌아가시기까지 할머니의 삶은 어땠을까. 죽음 직전의 삶을 자신의 계획대로 꾸려나가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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