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국 동국대 여해연구소 전략본부장
정형국 동국대 여해연구소 전략본부장

여해연구소에서 이순신 장군의 삶을 설파하면서 우리 사회 지도자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한마디는, 오직 나라에 대한 걱정과 겸양함과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강한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경양함은 난중일기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공을 감추는 겸양함의 미덕은 지금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행동이다. 또 수없이 많은 모함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우국충정의 정신으로 살아왔고 백의종군 자세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 나갔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원균 장군의 모함이 이어졌지만 굴하지 않았다. 원균의 아집과 고집은 결국 자신과 수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거제칠천량해전의 패전 원인이 부하들의 배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부하의 기밀누설로 잠자는 새벽녘 적군의 기습공격으로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모함하고 험담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삶 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은 훌륭한 장수 밑에는 훌륭한 부하들이 있다는 점이다. 장군 곁에는 늘 네명의 충신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녹도만호와 어영담·송희립·나대용이다.

충신들은 거북선의 건조기술과 전략전술 등 각기 제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겸비한 훌륭한 장수였고, 그들이 있었기에 불패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옥포대첩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무려 26척의 왜군의 전함을 무찔렀고, 그날의 승리와 수군들의 기백은 훗날 23전23승의 발판이 됐다.

한산대첩 승리의 숨은 일등공신은 김천손이라는 목동이다. 김천손은 지금의 거제대교 견내량에서 통영 삼덕항까지 무려 25㎞의 험한 산길을 순식간에 달려 왜군의 동향을 장군께 알려 대비하게 했고, 한산대첩의 신화를 만들었다. 연상해보면 시민의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를 새삼 느낀다. 이순신 장군은 늘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수군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사기진작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반면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의 장수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패전했다. 전장에서 경계에 소홀하고 방심한 나머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칠천량의 패전을 교훈으로 남은 12척의 배와 함께 전라좌수사로 원복되면서 전의를 불태웠고, 이후 명량해전 등을 승리로 이끌며 불패신화를 계속 썼다.

강직한 장수였지만 이순신 장군의 인간미 넘치는 행동도 돋보인다. 식구처럼 생각하고 함께 살아온 식솔들의 죽음 앞에서 통곡했다는 것을 보면 아래 사람들을 끔찍이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했다. 적을 눈앞에 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아군을 과감하게 처형하는 행동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 때로는 강하고 강직한 성품을 보여준다.

전쟁터였기에 부모의 생일을 챙기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었고, 백의종군할 때 어머니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전장에서 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마치 자신의 잘못으로 아들을 잃었다는 슬픔에 통곡하는 모습은 평범하면서도 자상한 부모이기도 했다. 전장의 급박한 순간에도 매일 일기를 쓰는 자세는 후세에 큰 귀감이다. 난중일기는 그 시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귀한 역사적 자료로 가치가 높으며,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그 성품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장의 어려운 상황속에서 후세를 위해 시대의 기록을 남긴 장군을 시대의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의 삶을 하나하나씩 재조명하고 본받아 실천하는 자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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