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한 문화재와 자료들이 인식의 오류로 가치 훼손돼

김무영 시인
김무영 시인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패(百戰不敗)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이 말은 손자병법에 나온다. 상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고 난 후 행하라는 말이다.

20년 전쯤 가조도 동쪽 작은 섬 취도로 진격했다는 전갈이 왔다. 이유인즉 취도의 전승비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장수인 도고 헤이하찌로 제독의 기념비라서 없애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긴급히 가조도 주민 대표에게 행위를 막으라고 말하고 단체 관계자와 설전을 벌였다. 도고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원동력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당시 러시아가 전쟁을 선포하자 수십 배나 우위에 있는 러시아에 패배는 당연하였기에 일본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천황은 도고 장군에게 전장을 맡기자 도고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승전을 올린 해역들을 둘러보면서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새긴다. 일본해군사관학교에서 배운 이순신 장군을 도고는 가장 존경했고, 이순신 장군의 지력을 익혔기에 막강한 러시아 함대를 무찌를 수 있었다. 도고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원동력이 된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며 취도에 전승비를 세운 것이다. 

한국의 문호 청마 유치환 시인은 극작가 형인 동랑 유치진과 함께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문헌 등에는 아직도 이들 형제가 통영 출신으로 되어있다. 둔덕 방하리 지전당골 이들 형제의 부모님 묘소 옆에 청마 선생의 내외분 묘소가 있고 바로 아래 세 자녀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자녀들은 생전에 “아버지(청마)가 둔덕에서 출생하였다는 것을 할머니(청마의 모)로부터 들었다”고 말해 왔으며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모님(청마 내외) 묘소 바로 아래 자신들이 잠들 수 있도록 유언하여 이뤄진 것이다. 

청마 선생의 출생지 논란이 처음 일기 시작할 무렵, 방송국에서 취재를 왔다. 그들에게 청마 선생의 시(詩)에서 나온 정서, 동랑, 청마 두 형제가 어릴 적 놀았던 정자나무, 생가에 걸레질로 반질반질한 대청 등 흔적들을 설명하며 명백하게 이곳 거제출신임을 설명하고 생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생가는 다 허물어졌고 새집을 짓겠다는 거였다. 억장이 무너졌다. 불과 며칠 전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와서 기둥 등 낡은 부분을 수리하는 방법까지 일렀는데 말이다. 

같은 해 김영삼 생가가 허물어지고 새집을 지었다. 마치 음식점 같은 집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부임 당시 지지율이 80%가 넘어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생가가 낡아 비가 새고 주차장이며 화장실이 부족하여 불편했지만 김 대통령은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이다. 생가란 그 모습 그대로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생가를 허물고 이상한 집을 지어 요새화하는 이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무지의 극치를 달리는 행위다. 겉으로 반질반질하여 덧보이게 한다고 문화가 될 수 없다. 

사람이든 물체든 그것이 지는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알아 인식하여 선조들의 지혜와 전통을 본받고 잇자는 것이다. 이로고도 누구 하나 지적하지 않았으니 총체적 난제다. 지도자나 사회단체는 무엇을 하는 것이며 지역 언론은 또 무엇이었는지. 

고려 의종이 피왕이 되어 거제로 쫓겨 왔을 때 유배를 보낸 자신을 불러 복귀하기만 기다리던 정서는 의종을 그리며 노래를 지었다. 우리말로 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작자가 확실한 유일한 노래인 정서의 “정과정곡”이 그것이다.

당시 정서를 고향인 동래로 귀양 보내 이 가사를 동래에서 지었을 것이라고 국문학사에서 그의 단정하였는데 우리 고장 출신 고영화 고전연구가가 고문헌을 다 뒤져 정서의 유배생활 2/3를 거제에서 보냈으며 특히, 의종이 거제에 있는 동안 정서 역시 거제에 거주하면서 이 가요를 거제에서 지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귀중한 고증을 바탕으로 견내량이나 오량성 어디에 정과정곡 가요 비가 세워졌어야 하지 않았는가. 

거제 곳곳에는 문화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천 리에 달하는 해안에서 고기를 잡고 해초를 캐던 흔적들이며, 숭어를 잡기 위해 망을 보고, 소를 몰고 나무를 하던 길이 곳곳에 있다. 온난해양성 기후 특성으로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는 생태 보고지다. 어느 것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가장 소중한 문화들이 여기에 있다. 또한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기에 누구나 감동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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