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 창원에 살고 있지만 거제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향우회장을 20년 동안 맡아온 이유입니다."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75)회장은 지금도 동부면 앞바다를 떠올리면 엄마 품속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고 힘들고 외로울 때 고향 친구를 만나 한바탕 웃고 나면 시름이 사라진다며 고향에 대한 진한 애정을 살갑게 표현했다.

정 회장은 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재창원 거제향우회 20년 붙박이 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그가 고향 거제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앞으로 향우회를 통해 고향 친구·선배·후배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힘이 닿는 한 끝까지 봉사할 생각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창원에 거주하는 1만 거제 향우인과 고향 거제를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봉사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그런 면에서 지난 연말 송년의 밤 행사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시간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걷어내고 재창원향우회가 하나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는 향우들의 감사 인사 때문이다.

또 이날 박종우 시장이 참석해 시 담당 부서에 향우인을 위한 전담 직원을 배치하는 등 향인들도 거제시민이라는 자긍심까지 느끼게 해 더욱 힘이 났단다. 

그는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을 경영하는 대표지만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그의 성공 뒤편에는 눈물로 뒷바라지 한 어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다. 학업은커녕 끼니 걱정이 앞섰던 유년시절,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동부초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중단하고 집안일을 돕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똑똑한 막내만큼은 공부를 시켜야겠다며 6년 동안 정성으로 통영 유학을 뒷바라지했다. 

민간 통일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 받은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민간 통일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 받은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이어가며 꼭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집도 사주고 원없이 돈을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그의 마음이 하늘에 닿지 않았던 탓인지 어머니는 성공한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1990년 1월 세상을 등졌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은 과욕이라는 생각에 부산의 작은 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턱없이 적은 월급으로 가난을 벗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첫 사업은 휴대용 배터리를 이용한 전등 설치였다.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생활하는 지역에 밝은 전등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다는 농어촌 전등개발공사의 말만 믿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배터리 수명이 짧은데다 재활용도 어렵다는 이유로 손님들이 선호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첫 사업은 실패로 끝이 났다. 

첫 사업 실패로 그동안 모은 돈마저 모두 날린 그는 단짝 친구의 권유로 1973년 마산에서 대한제당 대리점을 시작했다. 밀가루와 설탕이 귀한 시절이었기에 잘만 하면 큰 이익을 얻겠다는 판단은 맞아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동상사를 설립해 두 번째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더 이상 실패는 죽음이라는 각오로 탁주 공장과 어묵 공장 등 밀가루를 대량 사용하는 식품공장을 상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 결과 이듬해부터 매년 집 한 채 살 돈을 벌었다.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 @강래선 기자

그러나 10여 년 승승장구하던 사업도 잠시 경쟁업체에서 투서를 넣어 세무사찰을 받게 되면서 사업에 위기가 왔다. 

1980년대 군부 시절에 세무사찰은 빗겨나가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직하게 회사를 경영한 그였기에 겨우 회사를 이어갈 만큼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회사는 다시 예전 활기를 되찾고 번창했다.

인생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있듯 IMF외환위기 때엔 지인의 부탁으로 싸게 산 밀가루 가격이 폭등해 큰 이익을 남기는 큰 행운을 잡기도 했다. 

그는 이 기회에 빌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어머니와 아내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부모의 희생으로 성장한다지만 그의 어머니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낌없는 나무였고 그의 아내는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오랜 세월 자신의 옆을 묵묵히 지켜줬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조선산업 침체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대우조선 한화 인수로 조선업의 새로운 중흥기가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며 조선업을 대신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해양 관광산업에서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거제가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두 번이나 구한 역사의 고장임에도 요즘 세대가 잘 모르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며 거제신문이 거제의 역사를 오롯이 알리는 역할을 대신 해주기를 부탁했다.

 

재창원 거제향우회 정영노 회장은

- 재향원 거제향우회 회장
-국제로타리 3722지구 2021-2022총재
-경남은행 중리지점 명예지점장
-마산회원구 노인종합복지관 운영위원장
-마산회원구 노인종합복지관 후원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민족통일 중앙협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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