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윤일광 칼럼위원

영남권에서는 여우를 여시 또는 야시라 부른다. 천 년 묵은 여우는 매구다. 설화나 민담,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여우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특히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어 매혹적인 미인으로 둔갑해 사람을 홀려서 잡아먹는 요물이다.

주로 여자가 깜찍하고 영악하게 행동하거나 내면을 숨기고 겉으로 딴청을 부리며 애교를 떠는 것을 비유적으로 여우짓이라 한다. 그밖에 우아하고 섹시한 여성을 가리키거나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을 은유하기도 한다. 보통 여우는 여성, 늑대는 남성을 비유한다. 여우의 이미지는 교활함과 간사함이지만 그 이면에는 영리함이 깔려 있다. 제2차 대전 때 독일의 육군 원수였던 롬멜을 '사막의 여우'라 했고, 야구나 축구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빼어난 선수는 '그라운드의 여우'고, 발군의 농구나 배구선수는 '코트의 여우'다.

우리나라 여우중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은 '붉은여우'다. 일반적으로 여우라 하면 붉은여우를 말한다. 흔히 불여우라고도 한다. 털빛이 진한 붉은 색이 아니라 주황빛이 살짝 감도는 검붉은 황토색 느낌의 갈색에 가깝다. 옛날이야기 탓에 여우라 하면 괜히 겁이 나고 무섭다. 사람 잡아 먹는 맹수라고 생각하지만 붉은여우는 생김이 꼬리가 큰 것 말고는 개와 비슷하고, 성격도 겁이 많아 사람을 먼저 습격하는 일이 거의 없다. 영국에서는 그냥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정도로 여긴다고 한다.

여우 목도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신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물품으로 가죽을 노린 남획과 한국전쟁 이후 쥐잡기운동이 뜻밖에 여우의 멸종을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토종여우는 현재 남한에 20여 마리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 해운대 해안가 야산에 살던 붉은여우가 7개월 만에 부산을 떠난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우는 떠나도 행복한 집에는 여우가 살고 있다. '토끼 같은 새끼와 여우같은 마누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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