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
윤일광 시인

초등학교 방학숙제에 생활계획표 작성이 있었다. 평소에는 8시가 돼도 어머니가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던 아이가 계획표 상에는 6시 기상, 아침운동 30분, 아침공부 90분, 8시 아침밥 먹기, 낮 12시까지 방학숙제하기 등 하루가 온통 공부, 공부, 공부다. 그런데 한 사흘 정도는 계획표에 맞춰 하려고 노력하지만 며칠을 가지 못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규율을 만든 탓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작가 닥터로우(E.L Doctorow)는 '느리고 깊은 글쓰기'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밤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너무 멀리까지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게으르지 않고 쓰다보면 어느덧 목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18년(1436년) 6월23일 기사에 "대저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종말에 태만해지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며, 더욱이 우리 동인(東人·조선사람)의 고질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말하기를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 정녕 헛된 말이 아니다"고 한탄한다.

1911년 10월 남극점 최초 도착을 놓고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과 영국의 해군장교 로버트 스콧의 세기적 대결이 있었다. 결과는 아문센 팀이 먼저 남극점에 도달하고 안전하게 복귀했다. 돈과 장비가 훨씬 좋았던 스콧 일행은 지친 나머지 눈 속에서 전원 사망하고 만다. 아문센은 대원들이 체력을 소진하지 않도록 날씨가 좋건 나쁘건 매일 '20마일(32㎞) 행진'을 규율로 정하고 실천했다. 반면 스콧은 날씨 좋은 날은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대원들을 혹사했고, 날씨가 나쁘면 텐트 안에서 쉬었다.

규율이란 일관된 행동의 양식이다. 새해가 되면 금연이든 다이어트건 건강과 관련된 결심을 하게 되지만 그게 헛방이 되고 마는 것은 일관된 생활속의 습관으로 정착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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