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시에는…

1989년 7월20일 거제신문 창간소식지로부터 34년, 거제신문이 지령 1500호를 맞았습니다. 지역언론의 필요성에 부응해 직필정론의 강건한 기치를 들고 돛을 올린 거제신문은 당시 거제의 유일한 지역 언론사로서 지역 유일한 시민 대변지의 역할에 충실했고 앞으로도 사명을 잊지 않고 약진하겠습니다. 

현재 거제지역에 기반을 두고 등록된 언론사는 34곳, 그러나 유일하게 지면 신문을 지키고 있는 신문은 거제신문이 유일합니다. 지령 1500호를 맞아 거제신문은 30여년 전 이제 막 거제지역에 언론이 태동했던 그 시절 기사를 추억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는 대규모 사업 시행이나 사건이 아닌 독자 및 시민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하지만 요즘은 신문기사에 등장하기 어려운 사건들로 선정했습니다.  - 편집자 주

 

창간호 6면(1989년 10월6일)...분교 앞둔 거제의 국민학교들

1989년 거제지역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는 취학 아동 감소로 분교가 많았다. 당시 거제지역에는 49곳의 초등학교와 13곳의 분교가 있었고 거제신문은 지면을 통해 분교를 앞둔 구천초등학교와 학동초등학교·망월분교·여차분교를 소개했다. 

2호 6면(1989년10월13일)...바쁜 농사철에 훈련 없애야

1989년 10월 당시 거제의 농촌은 겨울을 대비한 비닐하우스 시설작업으로 농번기였으나 예비군 훈련이 소집되자 이에 불평을 토로하는 농민들이 많았다. 한편 예비군은 1968년 1월21일 북한 남파공작원의 대통령 암살 시도 미수 사건(일명 김신조 사건) 이후 제도화 됐다. 

3호 7면(1989년 10월20일)...거제-부산간 헬기운항 중지

1989년 10월 거제와 부산을 운항하던 한국항공 거제영업소의 헬기가 운항이 중단됐다. 거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헬기 운항은 11월15일 재개 됐다. 이 헬기는 원래 하루 7회 왕복 운항했으나 89년 9월 울릉도 헬기 추락 사건 이후 하루 4회로 운항 횟수가 줄어들었다.

12호 5면(1989년 12월23일)...유선방송, 어린이 볼만한 것 없다

초·중·고 학생들의 겨울방학을 앞둔 1989년 12월 거제신문이 거제지역에서 운영하던 유선 방송이 학생들의 교육에 유익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당시 거제지역은 장승포·옥포·고현·지세포 등 5곳에 모두 7600여 가구가 유선 방송을 시청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15호 7면(1990년 1월20일)...설날 귀성객 수용대책 부심

1990년 1월20일 설명절을 앞두고 거제지역이 귀성객의 수송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개인 자가용보다 대중교통 이용이 많았던 시절이어서 당시 거제는 택시부제 해제·시외버스 증회를 계획했고, 대우·삼성조선은 관광버스·사내 버스를 동원한 직원들의 귀성계획을 세웠다.

14호 10면(1993년 12월21일)...공중전화카드 민원 급증

지금은 개인 통신장비가 발달됐지만 1993년만 하더라도 호출기(삐삐)나 휴대전화도 대중화되지 못했다. 공중전화카드는 당시 동전을 대체하는 편리한 시스템이었으나 손상이 쉬워 각종 민원이 속출했다.  아직도 지역에는 116곳에 공중전화박스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성신문 26호 9면(1991년 11월16일)...경운기 교통사고 빈발

최근 농촌에는 경운기를 대신해 관리기나 트랙터를 보유한 농가가 많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경운기는 농가에 없어선 안 될 농기계이자 교통수단이었고 그러다 보니 경운기 교통사고도 빈번했다. 거제지역은 1990년 기준 1800대가 넘는 경운기가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성신문 87호 4면(1993년 4월19일)...국교생 사행성놀이 충격

1993년 4월19일 거제지역 국교생(초등학생)들이 학교 앞 문구점에서 부동산 투기와 주식을 흉내낸 사행성 놀이가 유행해 우려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보도된 사행성놀이는 '부루마블' 등 보드게임으로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경제관념을 키우는데 이용하고 있다.

기성신문 5호 7면(1991년 6월1일)...염소 새끼 5마리 분만

1991년 5월 둔덕면에서 5년생 염소가 한꺼번에 새끼 5마리를 낳아 화제가 됐다. 염소는 임신 기간이 145일에서 160일 사이로 보통 한배에 1~2마리를 낳는데 5마리를 한꺼번에 낳는 경우는 요즘도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성신문 67호 7면(1992년 10월3일)...거제도 TV 난시청 해소시급

요즘은 IP-TV나 각종 인터넷으로  TV를 시청하지만 1992년 거제지역은 일부 유선방송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송신 안테나에 의존해 전파를 받아 TV를 시청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거제지역의 난시청 해소를 위해 경남도의회에서 현지답사를 하기도 했다.

기성신문 64호 7면(1992년 9월8일)...200살 대형거북 사로 잡혀

1992년 8월29일 남부면 해금강 십자동굴에서 길이 180㎝ 가량의 대형 거북이가 잡혀 화제를 모았다. 버려진 그물에 걸린 이 거북이는 유람선사가 발견해 구조한 후 그물과 등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고 탁주와 밥을 먹인 뒤 이날 오후 3시께 지심도 앞 해상에 방류됐다. 

164호 10면(1993년 12월21일)...도천골 전화 개통

1993년 12월15일 연초면 명동리 도천골에 경사가 났다. 이날 거제전화국은 1200만원의 예산으로 지하케이블 2.5㎞를 가설해 전화를 개통했다. 도천골은 당시 전화 연결에도 전기는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지역 최초 전화설치는 1883년 12월 장승포 이리사 전신사무소의 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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