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고등학교 3학년 알레

연초고등학교 3학년 알레 학생. /강래선 인턴기자
연초고등학교 3학년 알레 학생. /강래선 인턴기자

"여러분 도움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출구를 알 수 없는 동굴에 홀로 갇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저를 지탱하고 앞으로 나가게 만든 것은 당신의 격려와 응원의 말이었습니다."

"이제 더 큰 목표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격려해주고 물질적으로 도와준 거제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당신이 내게 베풀어 준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꼭 베풀겠습니다." 

올해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한 연초고등학교 3학년 알레는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꿈을 갖게 해준 거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제2의 고향 거제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중상층 가정에 태어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다가 정치적 이유로 궁지에 내몰린 아버지를 따라 2016년 임신중인 어머니와 3명의 동생과 함께 안산시에 왔다.

그러나 부모님이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졌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직장을 옮겨 다녀야 하는 아버지를 따라 안산에서 전남 고흥으로 갔다가 4년 전 희망을 알게해준 거제로 와서 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타고난 언어 습득 재능으로 한국어를 빨리 터득해 친구들과도 별 무리없이 지낼 수 있었다. 

살기 위해 터득한 친화력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모두가 손을 잡아주었기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꿈꿔왔던 UN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연초고등학교 3학년 알레 학생. /강래선 인턴기자
연초고등학교 3학년 알레 학생. /강래선 인턴기자

#사랑을 깨우쳐 준 거제는 제2의 고향

4년을 산 거제가 이제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는 몸은 이집트에서 왔지만 내 꿈이 태어나고 정신적 안정감을 찾아준 이곳이 진짜 고향이라고 자신있게 밝혔다. 

하지만 3월부터 또 다른 고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공현철 연초고 교장은 "당장 대학 입학금은 학교와 동문회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서울서 공부하는데 드는 생활비와 4년 학비를 20살 소녀가 감당하기는 버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가 아직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해 성적 장학금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알레를 3년간 지켜본 정성일 선생님은 "심성도 곱고 참 재주가 많은 아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제자"라고 했다. 덧붙여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도움을 계속 주고 싶고, 지난 3년 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했듯이 대학 공부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을 시기에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으로 옆길로 빗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확고한 자기 철학과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뚜렷해 앞으로 겪을 세파도 무난하게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며, 이제껏 자신감을 가지고 잘해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미래 UN 사무총장 목표 

3년 내내 수학이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수포자는 'in 서울 대학'이 어렵다는 선생님의 충고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합격의 비결이라고 밝힌 알레는 이번 방학에는 한국어 능력 시험 자격증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는 프랑스어·러시아어·일본어·중국어 등 언어 공부에 매진 UN 기구에서 일할 수 있는 기초 능력을 키워나가고 경제학을 이중 전공해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다부진 포부도 밝혔다.

또 바라던 꿈을 이뤄 빨리 성공해 부모님에게 집도 사주고 어린 동생들은 돈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그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알레의 얼굴에서 과거 1970∼80년대 우리 누나들의 잔영이 스쳐 지나갔다. 

바라던 대학에 합격한 또래 친구들이 휴식과 여행을 계획하는 동안 동생들을 돌보고 어머니를 도와 경제적 보탬이 될 일을 찾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알레의 미래가 밝게 빛나기를 바란다. 

또 대학을 마치고 꿈꾸는 일들이 하나하나 현실에서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인류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꼭 쓰임받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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