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2001년부터 교수신문은 전국의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왔다. 지난해 교수들이 추천한 사자성어는 ‘고양이와 쥐가 한패가 됐다’라는 뜻의 ‘묘서동처’(猫鼠同處)였고, 지난 12월 11일에 발표한 2022년의 올 해의 사자성어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내놓았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40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민생은 없고, 서로의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미래 발전보다 정쟁만 앞세운다.” 고 이유를 밝혔다. 과이불개는 논어의 ‘위령공편’,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등에서 나온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是謂過矣)’(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라고 했다. 연산군이 소인을 쓰는 것에 대해 신료들이 반대했지만 고치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이를 썼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될 즈음이면 나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다 지났다는 것을 느낀다. 대한민국의 지성들이 모인 교수집단이니 그들이 발표하는 사자성어는 정확하게 우리 사회와 정치 행태를 콕 꼬집어 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의 정치인들이나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눈이 있으니 그 사자성어를 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고치려하거나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음이 슬프기는 하지만,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교수들이 여전히 매의 눈으로 우리 사회와 정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우리사회도 사회지만 해마다 이즈음이면 내 개인의 삶도 돌아보게 되는데 올해 내 삶을 사자성어 아닌 한마디로 나타내자면 ‘구정물통’ 이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 내가 어렸을적만 해도 돼지를 키우는 집에는 구정물통이 있었다. 사람이 먹다 남은 온갖 음식물 쓰레기를 물과 섞어 담아두었는데 통을 흔들지 않고 가만히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물 찌꺼기는 밑으로 가라앉고, 위로는 맑은 물로 나뉘어져서 겉보기에는 맑은 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대기 하나를 넣어 한번만 휘저어도 가라앉아있던 찌꺼기가 다 올라와 맑은 물처럼 보이던 구정물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바뀌었다. 

나는 올 한 해 정말로 평화롭고 여유롭게 유유자적 살았다. 봄에는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며 꽃피는 봄을 찬양했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신록의 초록바람을 맞으며 나무그늘에서 유유자적 거닐었고, 가을에는 국화와 구절초가 피는 마당에서 푸른 하늘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리고 겨울, 겨울 초입까지도 나는 내가 좀 쓸만한 인간이며 평화를 사랑하고 인내심 많고 이해심 많은 인간인줄 알았다. 그건 그때까지 나의 마음 밑바닥을 드러낼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올 12월에 예상치 못한 두 어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작은 막대기 하나가 구정물통을 헤집듯이 가라앉아 있는 내 안의 찌꺼기들을 소환했다. 그 별거 아닌 일련의 사건이 평온한 나의 마음을 휘젓자 가만히 은둔하며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 착각하게 만들었던 나의 쓰레기 같은 인간성이 다 뒤집어져 올라왔다. 

아~ 나는 여전히 구정물통이었다. 겉보기엔 그럴 듯, 배운 척 하고 뭐 좀 고상한 척 하고 살았지만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자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나의 유치하고 거칠고 험악한 자아가 바로 튀어 올라왔다. 나는 결코 고상한 인간성의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냐마는 나도 참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까지 살았으면 좀 온유하고 깊이감 있는 인간성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나는 쨍쨍 소리 나는 질그릇 같이 가벼운 존재임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제 올 해도 일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올 해는 이렇게 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잡동사니를 확인했다면 내년에는 좀 더 순화되고 맑아진 내 자신을 보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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