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몇주 전 만해도 들판을 보면 그야말로 황금 들녘이었다. 황금색 도포자락을 주단처럼 깔아놓은 듯 그 풍성함과 아름다움에 겸허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 한톨의 쌀이 만들어지기까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많은 시간과 수고로움이 따라야 하는지를 알기에 우리는 매일 먹는 밥상 앞에서 주기도문에 기록된 말씀을 반복하듯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며 감사기도를 드린다.  

올해도 여전히 낙엽은 지고, 여전히 국화꽃이 피었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애씀, 그리고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가를 표현했다. 열매는 어느 날 갑자기 열리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땅에 심겨져 발화가 돼야 하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땅 속에 스며든 영양분과 수분을 먹고 자란다. 겨울의 추움과 봄의 따사로움,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을 견뎌야 하며, 나무는 세월을 먹고 드디어 열매가 열릴 정도로 성장한다. 

우리가 먹는 가을 사과나 단감에는 이러한 수고와 노력, 애씀의 시간이 필요했고, 때를 따라 비를 내리며 햇빛과 공기 등 자연을 돌보시며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에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특히 우리 앞에 놓인 과일들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며, 시련과 시간을 넘어 희망을 파종해야 하는 우리의 소망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몇 십년 전 보다도 훨씬 생활이 윤택해졌음에도 사람들은 감사를 잊고 산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만과 불평이 더 많아졌다. 사람들의 마음도 삭막함을 느낀다. 

왜 감사하지 못할까? 내게 있는 수만 가지보다 나에게 없는 한 두 가지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니 감사하지 못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니 교만해지는 인간의 부족한 심성 때문일 것이다.

이 계절에 모든 교회는 추수감사절이라는 큰 축제의 행사를 맞이했다. 이번 감사절에는 이러한 생각이 마음을 두드린다. 

"감사하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하지 못한 것과 이웃에 대해 더 많이 나누지 못한 것에 회개와 반성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환경이나 조건을 보면 도저히 감사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오늘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감사 위에 감사'라는 곡의 가사 중 "감사 위에 감사를 덮을 때 은혜 위에 은혜가 쌓이네"그리고 손경민의 '은혜'라는 곡의 가사 중 "내가 누려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소"라는 글귀가 감동을 준다. 

이 두 곡의 공통점은 인생의 메마른 심령을 감동으로 촉촉이 적혀주는 눈물과 같은 진주와 같기에 이것을 우리의 일상 가운데 은혜라고 표현한다.  

'은혜(恩惠)'의 사전적 의미는 '사랑으로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인류에 대한 신의 사랑' 또는 '마음에 두어 애틋하게 생각하다, 인류에게 사랑으로 베풀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다.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은 은혜이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은혜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며, 본질적으로 공로 없이 값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짜로 받고도 자기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물·공기·일용할 양식 등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빚지고 사는 것이다. 당연한 것처럼 여긴 것들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다는 고백을 할 때 비로서 마음과 생각이 겸손해질 것이며, 새로운 삶의 희망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에서 힘겨운 일들이 삶 가운데 닥쳐도 살아있음을 감사와 은혜로 노래하며, 소망에 찬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매일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나 됨을 깨닫고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노래를 불러본다. "감사 위에 감사를 덮을 때 은혜 위에 은혜가 쌓이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