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춘 거붕백병원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신현춘 거붕백병원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기대 수명 80세 기준으로 국민 약 40%가 암이 발생한다. 이 정도면 가족과 친지 주위 누군가는 항상 암이란 질병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당뇨병도 2020년 기준 16.7% 정도이므로, 결국 암이 당뇨병 보다 좀더 우리에게 가까운 질환인 셈이다.

암이 만연된 만큼 비례해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 두려움은 궁극적인 죽음의 두려움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죽음은 종점이자 결말이지만 암은 죽음에 앞서 함께 겪어야  할 삶의 행로이며 버티고 나아갈 무게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암 진단 선고부터 치료 중 경험할 여러 예상되는 사건들 즉, 경제적 고통·사회적 차별·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의 두려움·그리고 무엇보다 환자에게 직접 가해질 항암 치료제부작용의 신체적 고통.

기존의 항암제들은 세포독성 항암제로 1960~1970년대 미국 국립암연구소 NCI(National Cancer Institute) 국가 주도로 개발됐다.

당시 달 착륙 성공으로 고무된 미국 닉슨 대통령은 암 정복을 꿈꾸며 급기야 ‘Cancer Act 법안’에 서명하며 국가 주도 암정복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이에 모든 사람들은 암 정복은 시간문제이며, 곧 암 공포의 쇠사슬로부터 비껴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암을 연구할수록 암세포가 가지고 있는 숨겨진 비밀과 무한한 정보를 경험하고 수없이 좌절한다. 더욱이 이 시기 개발된 항암제는 항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구토·탈모·백혈구 감소 등.  항암 부작용은 환자들에게 심한 고통을 유발해 이로 인해 적절하고 일관된 치료를 못하고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모든 항암제 개발은 국가에서 민간 연구소와 제약업체들에 의해 주도권이 바뀌며, 항암치료 방식의 국면전환이 시작된다. 이는 암 유전자의 발견과 게놈 유전자 지도 작성 등 혁신적 바이오기술 발전의 결과다. 

결국 세포독성 항암제에서 탈피해 최초의 표적치료제 ‘글리벡’이 만들어지고 1상 2상 임상시험에서 엄청난 항암효과가 증명돼 3상 임상시험은 생략·축소하고 긴급 출시·시판된다. 

소위 표적 치료제의 시대를 알리게 되는데 이는 세포독성 항암제와 달리 정상 세포 파괴없이 직접 암 유전자만을 공격해 암세포를 살상, 암을 치료하므로 ‘Time지’에 이를 ‘마법의 탄환’으로 소개된다. 

인류 역사 처음으로 만들어진 표적 치료제로 휴대 복용이 가능해 비로소 암환자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최초 항암제’다. 

대부분의 표적 치료제는 내복약으로 고혈압·당뇨 약처럼 주머니 휴대·복용하며 면역치료제 역시 일부도 휴대용 복용이 가능하다.

이들 항암제는 기존 항암제가 가지고 있던 부작용인 구토·탈모 등이 발생하지 않아 암 환자들이 겪어야 할 신체적 고통이 적어 환자 삶의 질적 향상과 탈모 등 외모의 변화가 없어 일반인들과 괴리가 없어 현실생활에 쉽게 복귀할 수 있으며 직장생활도 가능해져 암 환자가 현실과 마주하며 사회제약 없이 경제적 능력의 보존이 가능하게 됐다.

주머니 항암제는 항암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인 치료효과인 생존율 면에서도 기존의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우위를 보임이 증명됐다. 

혁신은 혁명이었다. 유전공학과 면역학의 혁신은 주머니 항암제를 만들었으며, 주머니 항암제는 암 환자에게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누리는 혁명을 제공했다. 

세탁기가 여성의 자유와 인권의 발판이었듯이, 주머니 항암제는 암 환자에게 바로 그것이었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국가 주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여러 작은 연구소 공부벌레들이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혁신과 혁명은 커다란 골리앗 보다 작은 다윗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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