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을 제작할 때 몸 안에 불교의 상징물을 넣고 밀폐시켰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크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이를 복장유물(腹藏遺物)이라 하는데 당시에는 평범한 물건일지 몰라도 지금은 귀중한 자료가 된다.

720년 전인 1302년에 조성한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 중 창녕군부인 장씨가 쓴 발원문(發願文)이 있다. 온양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내용중에는 '서원하건대 다시 태어날 때는 남자의 몸을 얻게 해주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고려시대 군부인(郡夫人)이란 외명부 종친부인에게 내리는 2품 또는 3품의 작호이다. 남부러울 게 없는 귀족가문 여인이다.

천재시인이라는 허난설헌에게 세 가지의 한(恨)이 있었다. '조선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라고 했다. 가부장제의 조선에서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고려의 여성은 조선과는 달리 어느 정도 당당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국가에서의 여인들이 넘어야 하는 또 다른 차별이 있었다. 여성은 현세에서 성불(成佛)할 수 없다는 당대의 통념 때문이었다. 여성이란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내조하며 아들을 낳아 잘 기르는 것으로, 불교에서 조차 여성은 비주체적이며 가정 내 역할에 한정된 존재로 보고 있었다. 따라서 여성은 내세에 남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후에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변성남자설(變成男子說)'이라 한다.

이런 생각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이 깊어지면서부터 달라진다. 즉 일체제법은 정해진 상(相)이 없으므로, 남자와 여자라는 구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불교국 고려에서는 종교 때문에, 유교국 조선에서는 남존여비의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래저래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게 하소서' 이 땅에 살았던 여인들의 염원이었고 피맺힌 절규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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