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여름의 긴 터널을 통과하니 가을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더위에 지치고 비와 태풍으로 마음까지 상한 이들에게도 찾아온 계절은 하늘이 얼마나 높고 맑고 청명한지 딴 세상에 사는 느낌이다. 

이맘 때가 되면 언젠가 부터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명품과 같은 시를 떠올린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달은 까마귀 같이."  

그런데 정말 마른나무 끝에 다다른 까마귀처럼 홀로 서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가을 하늘은 어떤 색깔로 비쳐질까? 

꼭 가을이 와서 기도하는 게 아니라 답답한 사람은 이것저것 가릴 겨를도 없이 그렇게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자만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도 절망한다. 연약함 때문에 절망하는 것만이 아니라 건강한 자들도 절망한다. 결혼을 못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한 사람도 절망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이래도 절망하고 저래도 절망한다. 풍요지수나 지식지수가 높아질수록 절망지수 또한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절망에서 예외 될 사람은 없으며 절망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나 절망의 사각지대에 숨을 자가 없다. 

이처럼 우리가 살다보면 여러 가지 절망을 만나게 된다. 굳이 무엇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는게 힘이 든다. 급변하는 세상에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중압감이 우리의 심장을 압박한다. 절망의 수렁에서 헤메다 보면 일어 날 기력조차 없어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도 있다. 

본래 수렁의 특징은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면 더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그것 또한 불안의 수렁이 되어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빨려들게 한다. 

창조 질서에 따라 어김없이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며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 이 순환의 원리를 통하여 절망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가르침을 주는 귀한 성서에 기록된 말씀을 상고해 본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1-8).

절망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회복의 때를 갈망해야 한다. 그래서 절망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되게 하는 자원이다. 앞서 말한 김현승 시인의 말처럼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는 문구는 동의어로 해석이 될 뿐만 아니라 홀로 기도하는 겸허한 인생의 모습을 찾아가는 통로일 것이다. 더 이상 갈데가 없는 마른 나무 가지 끝에 다달은 까마귀와 같이 벼랑 끝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골프를 치려면 값비싼 골프채가 필요하지만, 기도에는 아무런 도구가 필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테니스를 치려면 파트너가 필요하지만, 기도는 파트너 없이 혼자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며 언제라도, 어디서든 가뿐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이다. 

'주여,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올 가을에는 자연도 힘겹게 지나온 지난 무더운 여름을 떨쳐버리고, 모든 이들이 가을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함께 느끼며 가을의 정취를 맛보는 기도의 계절이 되기를 바라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겸허히 고개 숙여 두 손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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