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수필가
최민호 수필가

장군 속에 든 똥물이 꿀렁거린다. 장군을 가득 채우지 않았거나, 지게가 등에 착 달라붙지 않고 흔들리면 영락없이 장군 속의 똥물이 꿀렁거린다.

다행인 것은 짚을 뭉쳐 만든 장군마개가 엉성해 보이지만 그 덕택에 똥물을 뒤집어쓰는 일은 드물다. 다만 마개를 꼭 틀어막지 않으면 똥물이 등줄기를 타고 내릴 때도 있다.

어른들이야 익숙한 솜씨로 일하지만 이제 겨우 중학생인 나는 서툰 솜씨로 장군을 지고 가서 내용물을 똥통에 부어 똥바가지로 밭고랑에 조르륵 붓는 일이 그렇게 수월치가 않다. 두어 번 논밭으로 오르내리면 몸도 마음도 지치기 일쑤다.

수도가 있는 지금은 물 귀한 줄 모르지만 수도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물조차 귀했다. 사람들이 누는 대소변만으로는 거름이 부족해서 화장실에 물을 부어 양을 늘렸다. 부엌에서 나오는 구정물은 소죽솥으로 가고, 집안 구석구석 닦은 걸레물이나 손발을 씻은 물은 화장실에 부었다. 어느 하나 버리지 않는 철저한 검소와 알뜰함이 배였다. 물이 많은 화장실에서 변을 보면 똥물이 튀어 올라 여간 난처하게 만들지 않는다. 요리조리 튀는 똥물을 피하는 요령도 익혀야 했다.

화장실의 똥물은 장군에 담아 직접 밭으로 나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외양간에서 나오는 소깔개를 층층이 재우면서 중간중간 똥물을 끼얹어 준다. 그렇게 해서 며칠이 지나면 김이 무럭무럭 나면서 발효되어 삭기 시작한다. 그 퇴비는 식물이 자라는데 최고의 양식이 된다.

스무 살 남짓한 무렵이었다. 산청 생초에 있는 친구집으로 놀러 갔다. 집안 어른들께서 무척이나 반가이 맞아주셨다. 여러가지 음식 중에서도 떡과 홍시가 별미였다. 특히 부드러운 홍시는 여간 맛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과식을 한 탓인지 해질 무렵 속이 거북해서 친구에게 화장실을 물었더니 아래채 2층이라고 했다. 화장실이 2층인 건 처음 보았다. 위에서 변을 보면 아래층에 있는 돼지 두 마리가 먹는 구조였다. 먼저 눈 똥을 주워 먹는 동안 약간의 설사기가 있는 무른 똥이 돼지의 머리 위에 떨어지자 돼지는 사정없이 머리를 흔들어 털어댔다. 그러자 갑자기 똥물이 튀어 올라 앉아 있던 나는 똥세례를 맞고 말았다. 여기서도 똥 잘 싸는 기술이 필요했다.

냄새 때문에 방에 갈 수 없어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소죽을 끓이고 난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목욕을 하게 해 주었다. 똥돼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긴 처음이었다. 이런 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똥장군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똥이 밥이라 했던 옛날 어른들의 말씀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에는 오로지 인분이나 가축의 배설물, 낙엽, 부엌에서 나온 재 등을 이용하여 두엄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 중 화장실이 거름 생산의 중심이었다. 화장실에 채워진 걸쭉한 인분을 옮기는 데는 똥장군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똥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장군마개가 단단해야 한다. 장군마개가 허술하면 뒷머리나 등허리에 똥물이 튀어오거나 타고 내린다. 짚단을 반으로 접은 것을 단단히 묶어 장군목에 꼭 맞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굵게 만들면 목에 잘 들어가지 않고 작게 만들면 술렁거리고 약간 크게 만들어 방망이로 두드려 숨을 죽이고 짚으로 돌돌 말아 묶으면 마개가 된다.

이제 똥장군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똥장군이 사라지면서 장군마개도 같이 사라졌다. 장군의 오물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마개의 역할은 참으로 크다. 장군은 마개가 있음으로 그 효능을 발휘할 수 있다. 짚으로 둘둘 만 것이 못나고 엉성한 듯해도 그게 없으면 똥장군은 쓸모가 없다.

우리 마음에서 성냄이나 고집이나 다툼 같은 똥물이 넘쳐나지 않으려면 이를 막아 줄 장군마개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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