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은숙 전 경남도의원
옥은숙 전 경남도의원

필자는 지난 8월29일부터 3일간 '전국여성 의정회'가 주최한 ‘부산 정치학교’에 참석했다. 아침 8시쯤에 거가대교를 건너 연수 장소인 ‘부산시의회’에 갔다가 저녁 8시가 넘어서 되돌아오는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여성 정치인의 역량 강화는 물론 여성의 정치적 사명과 책무, 미래사회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의 강의가 있었다.

약 50여명의 수강생은 모두 정치인이거나 정치지망생이었는데,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한눈파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보다 많은 근면하고 성실한 여성들이 정치계에 참여한다면 사회를 좀 더 정의롭고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모든 것이 서툴고 미숙했던 민주주의 사회의 초창기에는 보스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했고 국가의 의제도 사적인 자리에서 결정하기도 했다. 이른바 요정 정치 시대였다.

그 시절의 정치 문화에 거부감을 가졌던 여성들은 자연스레 정치권에서 멀어졌고 그로 인해 정치는 남성의 전유물로 고착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릇된 정치 문화로 인해 불거지는 각종 부정, 부패 범죄 행위 등의 폐해는 그동안 민주주의 의식과 소양이 한결 높아진 시민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신뢰도 평가에서 매년 정치인이 꼴찌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 결과 정직·섬세함·온화함·감성적·희생적으로 표현되는 여성성(女性性)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여성이 희생적이고 정직하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남성이 부정부패에 쉽게 빠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한국적 유교문화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체화된 의식과 여성 본연의 성차에 의한 경향성이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강조컨대 남녀를 열등과 우월이라는 잣대로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차는 엄연히 존재하며 장단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중에는 특별히 드라마 속의 우영우 변호사처럼 ‘서번트 증후군’의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자폐증과 천재성은 병존하는 개별적인 특징일 뿐이다.

이처럼 여성의 특성을 정치라는 영역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결코 불리하거나 열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치참여는 현저히 저조하다.

2년 전에 세상을 뜨신 시어머니는 진보적인 자식들보다 더 혁신적이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시민 상주들이 거제실내체육관에 분향소를 차렸다. 그때 시어머니는 첫 조문을 하시고 천수경까지 외셨다.

“앞으로 이런 대통령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던 시어머니의 한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토록 앞서가던 당신이었지만 여성의 정치참여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다가 2018년 8대 지방선거에서 필자가 경남도의원으로 당선돼 당선증을 들고 찾아뵀더니 그때야 격려의 말씀을 주시며 내 편이 되어 주셨다.

“거제 며느리가 정치를 하면 잘 할끼다. 하모. 내가 평생 아들만 쳐다보며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셋째 며느리를 응원할란다. 원래 여자들이 정치를 하면 부정이 없는 법이니라.”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의 1번 순위는 여성으로 하게 되어 있다. 그만큼 여성이 정치계에서는 약자라는 방증이다.

지금까지도 출산과 육아·가사를 주로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를 해 보겠다고 나서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긴 그런 면에서 보자며 남성도 다를 바가 없다.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직분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길을 선택하는 데는 어려운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그래도 여성의 정치계 진출이 더 난망한 것은 사실이다. 정치계 일부에서는 남녀동수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대표자로서 남녀가동등하게 정치참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구의 절반, 시민의 절반,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이듯이 대표자의 절반도 여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 시대에 맞는 정치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은 변해야 한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의 경우 17개 광역단체에서 여성 단체장은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고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 총후보자 568명 중 여성 후보는 33명으로 5.8%였으며 당선자는 3.9%인 단 7명에 그쳤다.

경남에 국한에서 보면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명의 여성 기초자치단체장도 탄생하지 않았다.

한편 지역구를 통해 당선된 시·도의회 여성의원 당선자 비율은 14.8%, 기초의원은 25%였다.

여러 제도적인 문제나 사회적 관행, 문화의 탓도 크지만, 여성 정치지망생의 부재가 더 큰 난제라고 본다. 이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영웅의 몫이 아니다. 소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어머니는 따뜻하면서도 강하다. 그 강인함은 올곧음과 유연함에서 나온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직접 나서자.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쟁취하는 일에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출산과 육아, 가사를 거뜬히 해내는 여성들의 저력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修身齊家가 돼 있으면 治國인들 못 하겠는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라던 플라톤의 경고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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