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복(2009. 116.8㎝ 80.3㎝/ il on canvas)

간밤에 내린 폭우로 기온이 조금 내렸는지 선선한 느낌에 모처럼 편안히 눈을 떴다.

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지세포항의 옅은 해무가 맞은편 낮은 산허리까지 번져 검정 같은 초록과 어울려 담담한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 보여주니 기대하지 않은 호사가 느껴진 아침이었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멋진 광경을 만나게 되면 머리카락의 끝이 서고 차가운 전율이 흘러 몸과 마음이 각성된다.

작가로서 늘 긴장하고 작업에 대해 오랜 고민을 하지만 그 시간만큼의 분명한 결과를 보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답이 없다. 늘 그렇듯 더 많이 느끼고 표현하는 노력이 필요할 뿐….

하지만 한가지, 오늘 아침 항구의 안개처럼 멋진 자연과의 조우는 스스로 실마리가 풀리듯 작업에 대한 영감을 떠오르게 한다.

몇년 전 함양의 연꽃지를 찾았다. 초록의 연잎·자주와 다홍·그리고 수줍은 듯 푸름을 담은 하얀색의 연꽃 등 그들의 화사함을 소제로 작업하기 위해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스케치도 했다.

그러다 얕은 수면 아래서 초록의 색감이 갈색으로 변해가는 꺾인 연잎과 꽃대를 보게 됐다. 조용히 소멸을 맞이하는 광경에 오히려 평안함을 느껴 화려한 꽃들을 그리려던 계획을 다 접고 작업했던 그림이다.

눈에 띄지도 아름다운 작품도 아니지만 꺼내 보면 오히려 그때의 열정과 평화가 느껴져 애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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