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역사를 통틀어 최연소 판서는 남이(南怡·1441∼1468) 장군이다. 17세에 무과에 급제해 세조 13년(1467) 이시애의 난을 평정,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오른다. 권력의 중심축이 남이 장군쪽으로 기울자 훈구대신 한명회 등은 간신 유자광을 이용해 남이의 역적모의를 고변케 하여 남이는 능지처참을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한다.

남이의 국문 때 영의정 강순이 지켜보고 있었다. 강순(康純)은 남이와 함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할 때 지휘관으로 함께했던 인물이었다. 예종 임금이 누구와 역적모의를 했는지 자백하라며 고문하자 남이는 강순을 지목한다. 깜짝 놀란 강순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80살이 넘은 나이에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인정하고 만다.

형장을 향해 가면서 강순이 "남이야, 네가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 나를 모함하느냐?"고 소리치자 남이는 "원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죄 없다는 것을 영의정으로서 말하지 아니한 죄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다. 제품의 유해성을 실험했던 서울대 조모 교수가 구속됐다. 조 교수는 "내 실험 결과는 '유해하다'와 '괜찮다' 이렇게 두 가지를 제시했는데, 옥시회사가 두 번째 결과만 선택했다. 나는 억울하다." 그러나 판결이 말한다. 그런 선택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죄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나치 독일에게 협력했던 언론인들을 처벌했다. 그때 한 언론사가 "우리는 협력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했다"고 항변했지만 "그것이 바로 죄다. 언론이 권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은 죄다."

조선 22대 정조 임금은 '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 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라 했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 침묵이 때로는 잔인한 위선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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