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숙이 거제시장애인복지관장
윤숙이 거제시장애인복지관장

몇해 전 이맘때 즈음에 생각지도 못했던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 기억하시죠? 제가 예쁜 아기를 낳았어요' 누구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맞다. 십여년 전 타지역의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일 때 만났던 정신장애인 은영씨였다.

은영씨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하다가 27세에 반복성 우울장애로 정신장애인이 됐는데, 반복되는 정신병의 재발과 이로 인한 입·퇴원으로 인해 가족들은 지쳐갔고 급기야 은영씨를 정신요양원에 입소를 시키고서는 가족들이 찾아오지 않은지 3년이나 된 시점에 정신요양원에서 취업훈련 대상자로 선정돼 장애인복지관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담당자인 나를 찾아왔었다. 은영씨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은영씨는 복지관에서 취업에 필요한 소양교육을 이수하고 한달동안 관광호텔에서 현장훈련을 받은 뒤 룸메이드로 취업했다. 당시 관광호텔을 운영하던 호텔 사장께서 정신장애를 가진 친척이 있어 정신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혹여 근무중 정신질환이 재발됐을 때도 병원치료 후 다시 복직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다.

은영씨가 관광호텔에 다닌지 3년째 됐을 무렵, 직장에서 만난 동료 정신장애인을 만나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들고 찾아왔고, 나는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후 그 지역을 떠나 지금의 직장으로 옮기고는 까마득히 은영씨를 잊고 살았다.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후 아이가 태어났다고 내게 소식을 전한 것이다. 순간 표현할 수 없는 만감이 교차했다.

정신장애인은 지속적인 조현병·분열형 정동장애·반복성 우울장애·양극성 정동장애 등의 정신질환으로 감정조절이나 사고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는데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말한다.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심한 정신장애인들은 복지서비스에서도 차별을 받아왔다. 최근 정신장애인의 복지서비스 배제조항이었던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됐다.

즉, '장애인중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다른 법률을 적용받는 장애인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이 조항은 서비스의 중복지원 방지를 위한 조항이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정신장애인들은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과 달리 장애인복지관 및 정신재활시설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

이제는 정신장애인의 복지서비스 배제를 유발하는 요인이었던 법조항이 폐지됐지만 여전히 지역사회 내 정신장애인을 위한 복지서비스 체계가 전무한 상황에서 지역의 정신장애인들이 이용할 복지서비스는 전무한 상황이다.

현재 거제시에 등록된 장애인 1만1278명중 정신장애인은 278명으로 거제시 인구의 0.12%, 등록장애인의 2.16%를 차지하고 있다. 정신질환의 특성상 타 장애에 비해 높은 사회적 편견과 정신장애 판정 기준의 엄격성 등으로 인해 등록되지 않은 정신질환자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수의 정신질환자가 지역 내에서 질환으로 인한 어려움과 복지시설의 부재로 인한 이중고를 경험하고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조현병·조울증·알코올 사용장애 등 정신의료기관의 정기적 치료를 받는 만성 정신질환자는 입원 및 약물치료 뿐만 아니라 병원 퇴원 후 지역사회로 복귀했을 때 기능회복을 돕는 재활서비스 및 주거시설·직업재활 등 포괄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정신재활시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거제시에는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의 사회복지 관련 조례도 아직 제정되지 않았고,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회복귀시설 또한 전무해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 방치되고 있다.

제42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중에서도 심각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인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보통의 사람이 누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은영'씨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거제사회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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