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하청면 올담농원 유상옥 농부

거제시 하청면 올담농원 유상옥 농부. /사진= 최대윤 기자
거제시 하청면 올담농원 유상옥 농부. /사진= 최대윤 기자

그의 삶은 요람기부터 성인이 돼 가정을 이룰 때까지 온통 조선소의 도시 거제였다. 어려서부터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를 보며 자랐고, 학교를 마친 후에는 14년 동안 조선소에서 시추선의 배관을 디자인하는 해양 특수선 배관설계 일을 했다.

그랬던 그가 2017년 어느날 농사를 짓겠다며 조선소 현장이 아닌 논밭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입어왔던 익숙한 조선소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농기구를 든 농부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였다.

처음에는 남편의 귀농을 응원하는 정도였다. 남편이 안정적으로 귀농에 성공하면 남편 덕에 전업주부로 사랑받는 아내와 엄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올담농원 유상옥 농부와 그의 남편. /사진= 유상옥 농부 제공
올담농원 유상옥 농부와 그의 남편. /사진= 유상옥 농부 제공

농사에 대해선 1도 모르는, 어렸을 때에는 배추가 땅에서 야채장수 아저씨가 만들어 오는 줄 알았던 사람이다.

남편의 귀농계획은 퇴직금까지 몽땅 귀농에 투자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도 내심 매일 똑같이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으로 설렜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너무 정직해도 너무 정직한 사람이었다. 농사를 지을 계획은 나름 완벽했지만, 키운 작물을 어떻게 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처음 도전한 작물은 배추와 양파였다. 하지만 값비싼 노동력을 들여 생산한 작물의 유통가격은 본전은커녕 오히려 팔수록 손해였다.

퇴직금을 포함, 그동안 열심히 저축해 놓은 자금은 점점 바닥이 났고, 남편은 생계를 위해 다시 조선소 현장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동안 투자한 귀농의 꿈과 노력에 대한 보상은 무용지물이 될 처지였다. 이때부터 그는 진정한 농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농업대학을 다녔고 거제시가 지원하는 청년창업농업인에도 응모했다. 좋은 귀농 교육이 있다는 정보를 얻으면 전국 어디든 발품을 팔았다.

올담농원 전경과 내부 모습. /사진= 유상옥 농부 제공
올담농원 전경과 내부 모습. /사진= 유상옥 농부 제공

수많은 발품과 고민 끝에 선택한 작물의 조건은 오로지 돈이 되는 작물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조건에 맞지 않는다면, 생산 및 수익성이 없는 작물이라면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그래서 계획없이 정직하고 열심히 키우다 실패한 첫 번째 작물인 배추와 양파에 이어 그가 최종 선택한 작물은 열대성 작물인 올리브와 히카마였다.

특히 멕시코 감자로 알려진 히카마는 성인병(당뇨)·다이어트·혈관질환 예방·면역력 강화·항산화작용 효과·칼슘 흡수 촉진·두뇌건강 도움·피부미용·항암작용 효과·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작물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작물을, 그것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물을 키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싹이 자라지 않아 마음고생을 해야 했고, 그다음은 병충해로 인해 실패를 맛봐야 했다.

거듭된 도전 끝에 작물을 수확할 때쯤에는 유통에 대한 고민이 몰려왔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인터넷과 SNS 가릴 것 없이 홍보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물 때문이었을까? 그가 키운 히카마에 대한 궁금증은 방송국으로 이어졌고, 그의 히카마는 전국에 알려졌다.

올담농원의 인기 프로그램인 관상용 미니정원 '테라리움' 체험사진과 작품들. /사진= 유상옥 농부 제공
올담농원의 인기 프로그램인 관상용 미니정원 '테라리움' 체험사진과 작품들. /사진= 유상옥 농부 제공

지난해는 그에게 특별한 한해였다. 지난해 11월 농촌진흥청국립농업과학원은 청년 농업인 '비즈니스모델' 개발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우수사례 청년 농업인 22명을 선정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대상인 국립농업과학원장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또 1톤 남짓 수확했던 히카마는 방송국 출연 등의 유명세에 힘입어 생산량을 10배 가까이 늘리게 됐고 조선소로 떠났던 남편도 다시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운영하는 하청면 올담농원은 직접 흙을 만지고 식물의 촉감을 느껴볼 기회가 적은 아이들은 물론 현대인들을 위한 이색체험이 가능하다. 투명한 유리그릇이나 입구가 작은 유리병속에 흙을 채우고 이끼와 식물 조약돌을 원하는 대로 배치해 즐기는 관상용 미니정원인 '테라리움' 체험이 인기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미래 농업은 단순히 1차 생산농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물의 가공·체험·원예치료 등 무궁무진하게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귀농은 작물에 대한 선택과 시설 준비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준비없이 시작해선 안된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농기구를 사고 투자와 실험과 실패를 반복해 얻기보다 작은 규모라도 조건에 맞는 작물, 유통에 대한 계획과 가능성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새롭게 귀농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 맞는 작물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며, 오랫동안 적잖은 투자가 진행된 작물이라도 생산·수익성이 없는 작물이라고 판단되면 냉정하고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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