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남부면 은하수횟집 김하수 대표

최근 거제시 남부면 대포근포항에서 익수자를 구한 70대 영웅 김하수씨. 사진= 최대윤 기자
최근 거제시 남부면 대포근포항에서 익수자를 구한 70대 영웅 김하수씨. 사진= 최대윤 기자

"올림픽 금메달 따는 장면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이날따라 잘 가지도 않던 바닷가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더라고…."

얼마전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대한민국의 영웅이 탄생하던 그 순간, 거제섬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남부면 대포근포항에서도 한 명의 영웅이 탄생했다.

1952년 태어나서부터 칠순을 넘긴 나이까지 단 한 번의 객지 생활 없이 오직 거제에서만 살아왔다는 남부면 은하수횟집 김하수(71) 대표의 이야기다.

사실 그는 거제에서 이름난 횟집의 사장으로 더 유명하다. 1990년대 양식업에 실패한 이후 우연히 관광객과 낚시객이 잡아온 자연산 활어를 횟감으로 만들어 팔면서 운영하게 된 횟집이 대박이 난 탓에 2년만에 양식사업 때문에 빌린 큰 빚을 갚는 것은 물론 지금 운영하는 횟집 건물까지 세웠을 정도였단다.

김하수씨가 익수자를 구조했던 위치를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최대윤 기자
김하수씨가 익수자를 구조했던 위치를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최대윤 기자

하지만 그는 돈을 버는 일도, 쓰는 일도 서툴렀고 큰돈을 모으진 못했으나 인심만큼은 후했던 탓에 많은 인맥과 친구들을 만들 수 있어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태어나 배울 곳도 문화적 혜택도 없어 친구들과 이웃들이 하나둘 고향 바다를 떠났지만 한평생 마을을 지켜며 살아온 세월이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했다.

오늘 이야기는 지난 9일 밤 10시40분쯤으로 거슬러 간다. 동계올림픽 사상 유례없는 편파판정이 이어지면서 온 국민이 첫 금메달을 염원하던 그때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 경기에서 황대헌이 1위를 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을 보느라 늦은 귀가를 서둘렀던 그는 그날따라 잘 가지도 않던 방파제 앞을 지나가게 됐다.

늦은 밤 어스름한 반달이 차가운 겨울바다에 빠져 있는 풍경을 구경하던 그가 배를 묶어둔 로프 아래에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야기는 슬픈 결말(sad ending)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가 인기척을 느낀 곳에는 술에 취해 바다에 빠져 정신을 잃어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당황했을 법도 한데 그는 침착하게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데 집중했다.

최근 거제시 남부면 대포근포항에서 익수자를 구한 70대 영웅 김하수씨. 사진= 최대윤 기자
최근 거제시 남부면 대포근포항에서 익수자를 구한 70대 영웅 김하수씨. 사진= 최대윤 기자

우선 지나는 행인을 불러 119에 신고를 부탁하고 익수자의 상태를 살폈다. 당시 익수자는 이미 탈진해 겨우 얼굴만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상태였고 그는 더 이상 구조가 늦어지면 익수자의 체온이 떨어져 아까운 생명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곧바로 물에 뛰어들어 구조에 나섰다.

주변에 구조 도구 하나 없는 상태였지만 그의 눈에는 익수자 머리 위 배를 묶어 놓은 로프를 의지하면 구조가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익수자는 무의식적으로 구조를 위해 접근한 그를 감아 안았고 그는 통영해양경찰서의 구조인력이 올 때까지 10여 분 동안 로프 하나에 두 사람의 목숨을 맡겼다.

그는 통영해양경찰서의 도움으로 익수자를 육지로 끌어 올리고 나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체온이 떨어진 익수자를 구하기 위해선 119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해경과 함께 익수자를 서로 껴안으며 체온을 유지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119구급차가 구조현장에 도착하고 익수자를 인계하고 난 그는 급격히 밀려오는 오한과 탈진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행히 집으로 귀가 후 몸을 추스르고 난 그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을 했다.

며칠 후 그가 구조했던 사람이 3~4일 병원에 입원 후 별 탈 없이 집에 귀가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 목숨 하나 구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단다.

그는 당시 침착하게 익수자를 구조할 수 있었던 것은 5년 전 수상레져사업을 하기 위해 쌍근어촌복합센터에서 취득한 스쿠버다이버 자격증과 인명구조사 자격증 수료 과정에서 배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다리만큼은 쉬지 않고 움직였던 것을 보면 수영을 상당히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그는 겨울 바다에서의 수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시 한번 같은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 같냐는 기자의 물음에 "솔직히 엄두는 나지 않지만 아마도 또 물에 들어가겠지. 사람 목숨이 오가는 데 따질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남을 위한 배려보다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다고, 다시 한번 같은 일이 생겨도 선택은 같았을 거라는 말하는 그가 이 시대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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