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정초에는 간지일(干支日)마다 세시풍습이 있었다. 올해의 경우로 보자. 양력 2월1일은 설날로 일진은 상유일(上酉日) '닭날'이다. 이날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바느질을 금했다. 2일은 '개날'이다. 개가 텃밭을 해친다고 일손을 쉬었다. 3일은 '돼지날'로 피부가 검은 사람은 팥가루로 세수하면 살결이 희고 고와진다고 믿었다.

4일은 '쥐날'로 콩을 볶아 먹었다. 콩을 볶으면서 '쥐 주둥이 끄시르자'고 주문을 외웠고, 논두렁에 쥐불을 놓았다. 5일은 '소날'이다. 소에게 노역을 시키지 않았고, 6일은 '범날'로. 부녀자가 돌아다니면 호환을 당한다고 외출을 삼갔다. 남의 집에 가서 대소변을 보면 그 집 식구가 호환을 당한다고 화장실 사용을 금했다.

7일은 '토끼날'이다. 이날 뽑은 실을 명실(命絲)이라 하는데 이 실로 옷을 지어 입으면 무병장수한다고 해서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시늉을 했다. 8일은 '용날'로 용이 우물에 낳은 알을 건지기 위해 부녀자들이 새벽에 물을 길었는데 이를 '용알뜨기'라 한다. 먼저 길러간 사람이 길러갔다는 표시로 우물에 지푸라기를 띄워놓고 간다. 머리를 빗으면 용처럼 길고 예뻐진다고 반드시 머리를 빗었다.

9일은 '뱀날'로 이날 머리를 빗으면 그 해 집안에 뱀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어 머리를 빗지 않았다. 10일은 '말날'로 이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는데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11일은 '염소날'이다. 염소는 온순해서 이날은 무슨 일을 해도 해가 없다고 여겼다. 12일은 '원숭이날'이다. 일손을 쉬고 놀며 특히 칼질을 하면 손을 벤다고 해 삼갔다. 부엌에 귀신이 있다고 해서 이 날만은 남자가 부엌청소를 했다.

정초부터 대보름까지는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 그 대신 보름날 오곡밥에 나물반찬으로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해야 하는데 이는 정초의 휴식기간이 지나고 농사일의 시작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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