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둔덕면 지역에 전승된 고려 멸망 후 옥씨가 은거하며 살았다는 산방산 옥굴. /사진=최대윤 기자.
거제시 둔덕면 지역에 전승된 고려 멸망 후 옥씨가 은거하며 살았다는 산방산 옥굴. /사진=최대윤 기자.

'두문불출'이란 말은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 것, 또는 사회의 일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말한다.

중국 춘추시대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멸망 직후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遺臣)들을 가리키는 말로 더 널리 알려졌다.

거제지역에도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충절을 지킨 인물과 현장이 남아 있는데 고려 멸망 이후 거제에 은둔해 살았고, 사후엔 두문동 서원에 배향된 정은(正隱) 옥사온(玉斯溫)의 이야기다.

기록에 따르면 옥사온은 의령 사람으로 충정왕 3년(1351년)에 태어나 태종 13년(1413년) 63세로 세상을 등졌다.

의령 옥씨 거제파의 시조이기도 한 옥사온은 고려충절의 표상인 정몽주에게 학문을 익혔고, 조열(趙悅)·길재(吉再)와 친하게 지냈으며, 창왕 1년(1389) 기사방 동진사 과거에서 장원급제(1위)해 벼슬을 시작했다. 당시 조선시대 명정승으로 알려진 황희가 이 과거시험에서 4위로 합격했다.

옥사온은 정몽주가 정치적으로 제거 당하자 '나라의 운이 다 했다'며 벼슬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거제도에 숨어 살며 호를 해은(海隱)이라 짓고, 옥굴에 숨어 '두문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둔덕면 지역에 전승된 고려 멸망 후 옥씨가 산방산 옥굴에 은거하며 살았다는 전설은 의령 옥씨 대동보(1999년 발행)와 의령군이 만든 '내고장 의령(1985년 발행)' 인물편에 자세히 수록돼 있어 옥굴의 주인공이 옥사온이었다는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조선은 건국 이후 고려에서 성균관 삼품교수관을 거쳐 관종부사 진현제학 벼슬을 지냈던 그의 재주를 아까워하며 수차례 불러 벼슬을 권했지만, 그는 끝내 조선의 녹을 먹지 않았다.

이후 거제에서 옛 조상의 땅인 의춘군(宜春君-현재 의령) 정골리(正骨里)로 돌아가 호를 정은(正隱)이라 하고 죽을 때까지 고려 충신이 아니면 손님을 받지 않고, 매양(동백) 꽃 필 때나 달 밝으면 시국을 상심하는 시(詩)를 지어 부르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산방산 옥굴은 등산객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굴로 산방마을 보현사 등산로를 따라 삼신굴에 도착해 맞은편 절벽(남동방향) 왼편 중간에 위치하며 입구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있다.

현재 옥굴은 안전 장비를 채비하지 않으면 동굴을 찾기 힘들며 동굴 내부는 2평 정도로 자연동굴에 안쪽은 인위적으로 동굴을 파낸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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