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물류팀 천종우 반장

벌써 28년이나 흘렀다. 지난 1994년 부산에서 배를 타고 건너왔는지 시외버스를 타고 왔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그에게 거제는 가장 사랑하는 도시라는 점이다,

그는 거제의 수많은 조선소 노동자 중 한 명이지만, 누구보다 거제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 작은 스케치북에 거제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낙서처럼 시작한 소소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의 스케치북에는 거제의 따스한 온정과 조선소 노동자들의 진한 땀 냄새가 느껴진다.

오늘의 주인공은 삼성중공업 물류팀 천종우 반장이다. 그가 그려가는 거제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지극히 평범한 거제사람들의 삶이 자세히 그리고 우리가 무심히 놓치고 있는 풍경을 담아내고 있어서다. 지난 6일 거제시청 앞 한 일본식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부산 소년, 꿈을 위해 바다를 건너다

부산 출신인 그는 19살 나이에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이제는 태어나고 자란 부산보다 거제에서의 삶이 훨씬 익숙해진 그는 거제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이뤘다고 했다.

거제에서 직장을 얻었고, 거제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으며 거제에서 첫차를 사고, 거제에서 집을 사고 가정을 이뤘으며 자녀들까지 낳고 나름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란다. 더구나 그가 이룬 모든 과정에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오롯이 그와 그의 아내가 이룬 결과라서 더 보람 있는 삶이었다고 했다.

40대 나이에 이미 자신이 계획했던 행복을 이룬 그가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2018년쯤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는 그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불탑을 공부하는 취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불탑 사진을 찍고 저장하며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만 남고 탑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아쉬움이 많았단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탑 사진만 찍을 것이 아니라 탑의 특징도 찾고 오랫동안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그림 남기기는 전국 사찰의 탑뿐만 아니라 거제의 문화유산은 물론 조선소의 일상,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소소한 일상까지 범위를 넓혀가게 된 것이다.

그에게 그림 그리기는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닌 기억의 방법이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거제역사·조선소 땀·소소한 거제풍경 

3~4일 마다 한 작품씩 완성된다는 그의 그림은 수많은 개인의 기록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모아 정리해보면 거제역사의 한 페이지가 자료가 되고 그 역사자료가 모여 시간이 흐르면 사료(史料)가 되고 있다.

요즘에는 거제에서 사라진 문화지만 20년전 만해도 거제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졸업하기 전 한 번쯤은 지역 조선소를 방문해 부모님들의 일터를 찾아보는 경험을 했었다.

그러나 현재 거제지역 조선소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투어 프로그램은 대우조선해양만 제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더구나 방산업체와 국가산업단지의 특성상 거제지역 조선소는 근무자가 아니면 조선소 현장의 풍경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선 조선소에 온갖 장비들과 풍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더구나 친절하게 장비의 쓰임새와 현장의 분위기까지 설명해 주고 있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의 그림은 조선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골목길, 오래된 가게, 그리고 거제 지역의 각종 문화유적까지 다양하다.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 그의 시선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덤이다.

특히 그는 거제역사와 문화재라면 물불가리지 않고 공부한다. 지난해에는 거제문화관광해설사 과정을 수료해 지역 학교를 돌며 강의도 했다. 그래서인지 역사 사랑꾼인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2시간 동안 거제역사 이야기를 하느라 식당이 마치는 시간이 돼서야 30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는 역사란 미래를 더 현명하게 마주하기 위한 하나의 열쇠라고 했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미래도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거제의 미래를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거제의 역사를 공부하고 조선소의 풍경과 거제의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이미 거제 지역에선 꽤 입소문이 나 있다. 지난해 11월 주변 지인들의 성원에 힘입어 일운면 구조라리 '쑥투디오'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과거, 햇살 아래 역사 순례기(100×150)'라는 이름의 그의 개인전에는 엽서 크기로 제작된 그의 작품 30여점이 작은 방을 가득 메웠고 방문객들은 그의 시선과 함께하며 조선소 현장, 거제의 문화유적지, 거제에 살면 한 번쯤은 지나쳤을 익숙함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는 "서툰 실력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고 거제의 오늘을 기록하는 시간인 만큼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라면서 "조금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2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거제를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가능 한 일이기에 앞으로 거제를 기록하는 일을 열심히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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