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부사 송희승의 '옥산금성축성기비'
거제부사 송희승의 '옥산금성축성기비'

거제면 동산리 수정봉 정상에는 길이 778.5m·최고높이 4.7m·폭 3m로 만들어진 거제옥산성(경상남도기념물 제10호)이 있다.

거제옥산성은 1873년(고종10) 거제부사 송희승(宋熙昇)이 백성을 동원해 관아 뒤편 수정봉에 성을 쌓고 성을 쌓은 내력을 비석에 새겼는데 이 비석이 옥산금성축성기비(玉山金城築城記碑)다.

옥산금성축성기에 따르면, 옥산금성은 1873년 3월6일 처음 축성을 계획하고, 3월15일 준비를 시작해, 5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송희승은 1873년 10월15일 옥산금성을 완성하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거제도 전역에서 2만냥이라는 축성비용을 마련했고, 축성공사 기간은 5개월 남짓이었다.

1899년 편찬된 경상도여지집성 거제군읍지 성지조에는 옥산금성에 대한 기록이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수정산성은 군의 동북쪽 5리에 있으며 부사 송희승이 계유년(1873년)에 축성했고 성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고 기록했다.

송희승은 1872년 고종9년 6월26일 임명장을 받고, 1872년 7월26일 부임해 1874년 7월까지 거제부사를 지내다 강원도 삼척영장(三陟營將)에 임명받고 거제를 떠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송희승은 거제부사 시절 옥산금성 축성을 쌓기 위해,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 백성들에게 큰 부담과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죄목으로 파직 당했다.

송희승은 그해 5월 장 100대형과 경상도 풍기군으로 정배(定配)형을 받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1876년 2월) 방축향리(放逐鄕里:벼슬자리에서 내치고 제 고향으로 내쫓던 형벌)형을 받는다.

그러나 송희승은 1879년(고종16년) 6월25일 순천영장(順天營將)으로 등용됐고, 1880년 12월29일 오위장(五衛將·정3품), 뒤이어 대구영장(大邱營將)을 지내다 1882년 9월14일 혜산첨사(惠山僉使·정3품)까지 했다.

송희승이 세운 옥산금성축성기 탓에 옥산성은 한동안 '조선의 마지막 산성'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016년 6월 옥산성 내 집수지를 조사하면서 7~8세기 중반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고 지금은 옥산금성이 아닌 '거제옥산성'이란 이름으로 거제의 3번째 국가사적 승격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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