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보는 그때 그사람]거농문화예술원 주명옥 원장

거제신문은 32년 동안 지면을 채워가며 거제신문의 역사를 함께 했던 주인공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다시 만나보는 10년 전 그 사람'은 그들의 근황을 묻고 반가워하며 예전과 달라진 그동안의 근황을 알린다.

지난달 30일 문동폭포 입구에서 ‘문동폭포길 거제문화예술제’의 개막식이 진행됏다.  오는 11월 30일까지 거농문화예술원과 상문동 문동폭포길 일원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올해로 여덟 번쩨 맞는 예술제다.

올해로 8회째 이어가고 있는 ‘문동폭포길 거제문화예술제’의 백미는 문동폭포길 주변을 가득채운 100인 시화전 이다. 올해는 133명이나 되는 전국의 문학인들이 참여했다. 이날 행사에는 거제문인협회를 비롯해 부산의 문인협회·신인협회·남구문인협회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며 시화전과 도예전 및 생활민화도 선보였다.

어느덧 8년째 부산과 거제의 문인이 어우러진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문동폭포길 거제문화예술제는 일반적인 예술제와 격이 다르다. 문동폭포길 거제문화예술제는 오늘의 주인공인 거농문화예술원 주명옥 원장을 비롯해 예술제를 만들어가는 제전위원 모두가 가족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본지는 지난 1997년 12월5일 제338호 9면에 '참된 삶은 언제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주 원장을 소개했다. 당시 주 원장은 대한민국 사군자의 대가인 왕산 박윤오 선생 문하에서 21년 동안 사사를 받고 전국을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출향 예술인이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주 원장은 "한폭의 그림과 글씨가 아름다워 문장에서 풍기는 멋스러움과 좋은 내용을 담은 책에서 풍기는 마력은 사람을 이끄는 기운이 있기에 글씨를 배우고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문동 저수지가 제 고향입니다

주 원장의 고향은 지금은 문동저수지에 있다. 문동저수지는 포로수용소 설치 후 식수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때 주 원장의 고향마을은 미군에 의해 강제로 소개되면서 문동삼거리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당시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 소개령으로 집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던 주 원장의 집안은 목재를 그대로 뜯어 날라야 했었다고 한다.

거농문화예술관은 삼룡초등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한 선친(주성국)의 유지를 받들어 주 원장과 여동생 순보·제수 이말례씨 등 예술인 가족 3인이 힘을 합쳐 문동폭포 입구에 설립한 문화공간 겸 예술인들의 쉼터다.

주 원장이 고향에 시비를 세우게 된 것도 돌아가신 선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한시 작가였던 선친이 4남4녀중 한시에 가능성을 보인 주 원장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였고 주 원장은 선친이 물려준 땅에 문화공간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의 호인 거농(巨農)은 거제의 '巨'와 농사 '農'자를 따와 지었는데 거제에서 예술을 꽃피우는 농사꾼이 되겠다는 그의 꿈을 담고 있다.

예술인 DNA 흐르는 가족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40년 가까이 고등학교 교사로 재임했던 주 원장은 시인보다는 문인화가로, 거제보다는 부산과 전국에 더 유명한 작가다.

평소 미소 가득한 온화한 얼굴의 주 원장이 먹을 갈고 붓을 잡을 때는 놀라운 집중력과 기운을 보이는데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순식간에 그려낸 작품에는 대가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국미술협회 문인화 초대작가까지 활동했던 그가 그림이 아닌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생전 한시에 밝았던 선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친이 작고하자 유품을 정리하던 중 '한시작법'을 우연히 접하면서 공부를 시작해 독학으로 한시를 익혔고 지난 98년 '한국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여동생 주순보 시인의 권유로 현대 시까지 배우게 됐다고 했다. 시 등단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직까지 현재 시는 주 원장보다 여동생인 주순보 시인의 수준이 높다며 여동생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나이로 80세(42년생)인 주 원장은 가족 모두에게 예술인 DNA가 흐른다고 했다. 한시에 통달하셨던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것도 있지만 예부터 거제에 유배 온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운문폭(문동폭포) 아래서 태어난 영향도 있다고 했다.

여동생에 이어 남동생인 주철민씨도 사진작가로 유명한 인물인데다 부인인 이말례 시인은 '문예시대'를 통해  등단해 부산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시인이다.

1997년 12월15일자 당시의 인터뷰 지면.
1997년 12월15일자 당시의 인터뷰 지면.

예술의 텃밭 거농문화예술원의 꿈 

거농문화예술원은 거제지역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지난 2013년 그의 호인 '거농'을 붙여 만든 공간이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문동폭포 입구 주변 땅은 거제시와 시민들을 위해 내놓고 있음에도 정작 예술원을 지을 당시엔 거제시에 허가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비영리 예술원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긴 설득 끝에 지어졌지만 지금도 건물 이외에 나머지 부지 공간에 대한 활용이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거농문화예술원은 배움 공간인 1층 전시실과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2층을 거농문화예술원을 찾는 예술인들에게 언제든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또 소규모 야외무대까지 갖춰 매주 시조창·사군자·서예·생활미술·민요를 배울 수 있는데 모든 강의는 거농 회원이면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주 원장도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사군자를 배우는 수강생들을 만나기 위해 쉼 없이 거제와 부산을 오가고 있다. 거농문화예술원과 함께 고향 거제의 또다른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지역문화인들의 사랑방으로 활용되길 바라고 있다.

주 원장은 "고향 문동 땅에 거농문화예술원을 만들고 전국의 수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만나는 일은 늘 설레고 뿌듯한 일"이라면서 "앞으로 많은 시민들이 거농문화예술원을 찾고, 이곳 거제지역에 예술의 꽃과 열매를 틔우는 텃밭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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