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뤄진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상 봉화만큼 효율적인 통신수단도 없었다.

봉수는 필요에 따라 밤에는 불빛으로, 낮에는 연기로 전달했다. 밤에 피워 올리는 것을 봉(烽·횃불)이라 하고, 낮에 피워 올리는 것을 수(燧·연기)라고 한다.

1485년 간행된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시대 전기 전국에 650여 개의 봉수대가 있었고, 신호 방법은 횃불의 수로 달리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 출현 시 횃불 2개, 국경 접근(근접) 시 횃불 3개, 국경 돌파(침범) 시에는 4개, 적과 접전 시에는 횃불 5개로 봉화를 올렸다.

현재 거제지역에 흔적이 양호하게 남아 있는 봉수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29호 옥녀봉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147호 가라산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202호 강망산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2호 지세포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3호 와현 봉수대, 도지정 문화재를 추진중인 백암산 봉수대 등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및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거제현 봉수조(烽燧條) 기록에는 계룡산과 가라산 봉수대만 언급돼 있을 뿐 나머지 봉수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사실상 이 두 봉수대가 거제지역의 직봉(直烽)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는 간봉(間烽)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봉수는 최종적으로 한양의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집결돼 소식이 조정에 보고했다.

제1로·3로·4로는 몽고·여진·중국 등 북방 민족의 침입을, 제2로·5로는 일본의 침입을 경계하거나 대비한 것이다. 또 봉수에는 직선봉수와 간선봉수가 있는데 직선봉수는 5대 기간선로를 직접 연결하는 경로를, 간선봉수는 직선봉수를 보조하는 봉수를 말한다.

거제지역의 봉수는 직선봉수는 가라산 봉수대가 유일한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봉수대는 간선봉수의 역할로 추정된다.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사진-조선 시대 전국 팔도에 있는 봉수대를 표시한 지도)와 봉수망 기간선에 따른 분류로 보면 거제지역의 봉수는 모두 일본의 침입을 경계하는 제2로에 속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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