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내 평생 이런 단어를 듣게 되는 날이 올줄 몰랐다. 먹거나 마시는 것 같이 생존에 바로 직결된 것도 아니고 아무데서나 쉽게 살 수 있었던 그 가로세로 20㎝도 안되는 부직포 쪼가리가 온나라 국민을 새벽부터 줄을 세우고 마스크를 서로 사기 위해 다투게 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밖으로 나와도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일 정도이니 진정 '마스크 대란'이 맞다.

마스크는 엄청난 위력으로 대한민국을 흔들며, 언제 방송할지도 모르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홈쇼핑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온 가족이 수 백통씩 전화를 하게 한다. 그것도 전화가 연결되면 천운으로 여긴다. IT 최강국에 반도체 대국, 초고속 인터넷을 넘어 5G를 쓰는 나라에서 마스크 대란이라니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자존감까지 팍 낮아지는 것 같다.

어제 낮에 둔덕면에 일이 있어 갔는데 오후 2시쯤 되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슬슬 줄을 서는 게 아닌가. 뭐하는 줄이냐고 묻자 마스크 줄이란다. 새벽부터 할머니들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아가고 2시 되면 밭일을 하다가도 마스크를 받으러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받아다가 본인들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식·손자들을 준단다. 아침잠 많아 결코 줄을 설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비싸게 사서 쓸 수밖에 없는지라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마스크를 사러 다녔는데 역시나 나는 항상 한발 느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가게에서 다섯개가 들어있는 마스크를 사게 됐는데 너무 고맙고 황송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같이 줄서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비싸냐고 살짝 불평을 하기도 했다. 가게 주인은 때가 때니만큼 비싸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했다. 하지만 나는 내게 마스크를 팔아준 것만으로 얼마나 고맙든지 연신 인사를 하며 나왔다. 

그런데 우연히 내가 산 것과 같은 마스크가 인터넷에서 팔렸던 가격을 보고 기함을 했다. 개당 800여원에 팔렸던 것을 나는 거의 다섯 배나 되는 돈을 주고 사면서도 고마워했던 것이다. 때가 때이니 만큼 비싸다는 주인 말은 때가 때이니 만큼 비싸게 팔아서 한 몫 챙기겠다는 말로 들었어야 했다.

우리나라는 국가적 어려움에 처하면 개인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 나서서 다른 사람을 돕고 나라를 돕는 민족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지난 IMF 때의 금 모으기 행사가 대표적인 예다. 그때 할머니들은 수십년 전 결혼반지를 내기 위해, 너댓살 꼬맹이들은 자신들의 돌반지를 내기 위해서 긴 줄을 섰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선다. 차라리 금을 사는 것이 더 쉽다고 누군가 말했는데 그 말이 맞다. 마스크가 아니라 '금스크'다.

마스크는 당분간은 필수품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건강을 뛰어넘어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는 문제기에 다들 마스크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이런 국가적 위기에 마스크 가격을 올려 팔아 부를 챙기겠다는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은 대체 어떤 심리인지 모르겠다.

온 국민이 마스크에 목숨을 거는 이런 위급한 시기에 몇푼 더 벌어보고자 마스크를 수백만장을 숨겨 놓은 인간들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지난날 국가적 재난 때마다 국민들이 보여줬던 이웃사랑 정신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나라가 망하면 내가 부자가 된들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돈이 생명보다 귀한가? 이 참에 한몫 챙기겠다는 생각을 하는 장사꾼이 있다면 한번 돌이켜보기 바란다.

그나저나 줄서기에 무척 약한 나도 내일은 부디 마스크 사는데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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