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사랑의 쌀 후원중인 반강웅씨

모든 이는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 그러나 모든 이가 부자(富者)는 아니다. 하늘의 뜻인지 인간의 노력이 부족한 것인지 부자(富者)는 항상 남의 이야기 같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삼시세끼를 다 챙겨먹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부자(富者)라 부르지 않는다. 기준이 바뀌었다. 비교할 상대가 바뀌었다.

반강웅(77·둔덕면)씨도 자신은 부자(富者)가 아니라고 한다. 부자(富者), 재산이 많은 사람 말이다. 부자가 아니라는 그는 그의 것을 나눈다. 추석과 설이면 자신의 고향 둔덕면 20개 마을에는 자신이 보내는 한 포씩의 쌀이 어김없이 전달된다.

그 세월이 20년이다. 3년 전부터는 둔덕의 늘지 않는 아이들의 머리수의 걱정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30포를 보낸다. 혹 힘든 아이가 있다면 어른이 보내준 쌀로 맛나게 밥 한 공기 '뚝딱' 든든히 먹으라고.

77세의 노구(老軀)는 100세 시대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정정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 이 시대를 원망하지만, 그 덕택에 선행은 그에게 의무가 되고 책임감이 되어 자신의 일이 된지 오래다.

"나 농사지을 때까지만. 나 좋아서 하는 일이 자식이나 어느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건 싫어. 나 농사지을 때까지만 함께 나눠 먹자는 거지 뭐"라고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반 어르신은 "오늘날 잘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노. 그래도 잘 안 주거든. 그래도 좀 나눠 살면 서로 힘이 나고 함께 갈 수 안 있나. 그렇게 사는 거지.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며 웃었다.

그는 둔덕에서 나서 둔덕에서 평생을 보냈다. 거제 밖을 나가본 적도 부모 옆을 벗어난 적도 없다. 5남1녀의 장남으로, 3남1녀의 아버지인 그에겐 거제가, 둔덕이 온 세상이고 우주다. 그래서 인가. 불우이웃돕기도 둔덕면에만 한다.

부모는 그를 각시와 결혼시키며 그녀의 홀어머니도 보듬어 안았다. 한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쉽지 않을 결정을 46년 전에 이들은 했다. 노모와 장모는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며 아들딸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는 것을 지켜보며 3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는 "내가 얼마나 부자고. 장모가 2001년 97세에 가시기 전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했다. 노모도 6년전 92세에 가셨다. 가시는 길 자식들 걱정에 추석날 다 모여서 헤어지려 할 때 가셨다. 어진 어른들과의 시간을 누구보다 많이 가진 나"라며 잠시 여운을 가지다 "그래 내가 부자다"라고 말을 이었다.

정말 그는 부자였다. 3남1녀의 자식들의 그에 대한 사랑은 극진했다. 2만평의 논과 밭을 혼자서 기계로 경작을 하는 그를 위해 그들은 그들의 휴일을 반납했다. 지금껏 일꾼 한 번을 부르지 않았다.

한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둘째아들 내외와 손자를 비롯해 큰아들 막내아들까지 휴일의 논밭에 반 어르신의 손길이 닿을 새가 없다. 이것을 돈으로 사려한다고 해서 살 수 있겠는가. 가르친다고 알 수 있겠는가. 주말이면 북적이는 이 부잣집의 풍경에 주변에 눈길이 모인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눠줄 것이 있어 좋고, 위해주고 알아주는 각시가 있어 좋고, 아비의 마음을 아는 자식들이 있어 좋다"고 말하는 어르신. 당신은 진정 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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