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자 요양보호사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 영화 '은교' 중.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동이 터온다. 새벽의 햇살보다 텔레비전의 불빛이 더 밝다. 바삐 일어날 일도, 서둘러 아침밥을 준비할 일도 없다. 종일 켜 놓은 텔레비전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일어났다가 앉았다를 반복하며 하루에 두 번 차리면 많이 차리는 나를 위한 밥상에 반찬은 호사다.

나이를 겉옷처럼 걸치니 그 무게가 무겁다. 혼자 서 있을 다리근력을 키운다는 핑계로 텃밭을 기어가듯 걸어가 앉는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자식을 위해, 곤궁한 밥상을 위해 무딘 손마디를 움직여 흙속에 기운을 넣는다. 이렇게 골짜기에 홀로 앉은 집, 홀로 앉은 박덕순 할머니의 하루가 길다. 떠난 자식들의 기억에 당신이 있기를, 늙은 어미의 기다림은 한(恨) 없다.

이선자씨(58·장승포동)는 요양보호사다. 지난 1년 한우리노인복지센터에 소속돼 거제·둔덕·동부·남부면 등지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있다. 옛날 같으면 고령에 속할 그녀의 나이도 그녀가 담당하는 어르신들에겐 청춘이다. 담당하고 있는 80가구의 어르신을 방문하기 위해 산도 올라야 하고 배도 탄다. 방문한 집에선 어르신의 혈압을 점검하고 센터에서 준비한 일주일 분량의 두유와 요구르트를 드리고 나면 길지않게 근황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하루 16곳이 넘는 집을 돌아보며 같은 행동 비슷한 대화에 지칠 만도 한데 그녀는 밝다. 80명의 박덕순 할머니에게 오늘 하루의 가장 반가운 손님이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그녀이기에 트레이드마크인 함박웃음의 인사를 잊지않는 것이다.

이씨는 "대부분이 독거노인들로 사람의 정이 고픈 분들이다"며 "'이 산골에, 이 섬에 나를 위해, 나 하나만을 위해 이렇게 와 주어 고맙다'며 손을 잡고 어깨를 어루만지는 그들의 반가움이 외로움인 것을 알 수 있기에 내일은 절대 형식적일 수 없는 일"이라며 일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다. 그리고 배운다. 나쁜 것은 나쁜 대로 좋은 것은 좋은 대로"라고 웃어 보이는 그녀는 사실 요양보호사가 된지 얼마되지 않은 신참이다.

재가근무 1년을 제외하면 한우리센터에서 어르신들과 함께한 1년이라는 시간은 요양보호사로서 시작과 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씨가 이 센터에서, 어르신들 사이에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녀가 건너온 세월의 깊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시아버지의 1년 반 투병생활 이어 홀시어머니 병간호 5년에 뒤 찾아온 갑상선암은 세상을, 노인을 보는 눈을 변하게 했다. 52세 늦은 나이에 요양보호사가 된 것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시어머니를 향한 마음 때문이었다. 기저귀 하나도 요령을 알고 갈 때 서로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고 힘이 덜 들 수 있을 것이라는 배려의 출발이었다.

그녀는 "사용한 기저귀가 방 한구석에 굴러다니고 언제적 밥상인지 그대로 방치된 방안에 누워있는 그 분이 나의 부모라면 내 손 내미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며 "내 마음을 여는 것은 지금의 형편이 아닌 마음이다. 전화라도 드려 안부를 묻고, 찾아와 손이라도 잡아 주면 된다. 이번 설 명절은 그냥 그런 자식들이 많아 어르신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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