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숨쉬기(호흡)가 인간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명현상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흔히 하는 말로 숨 쉬고 산다고 한다. 말을 보탠다면 호흡이야말로 한정 없는 기쁨이다. 이미 다음 차례의 호흡에서 분명히 살아있게 된 삶의 실체와 확신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일을 늘 목숨 끝에 두고 소위 생명과 삶에 연연하기도 한다. 공연한 걱정과 쓸데없는 좌절이 깃들일 틈이 없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 아닐까.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야가 여에 군림해서도 안 되며, 서로 알고 있는 잘못을 고집하는 것은 더더구나 비겁하다. 강한 자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목소리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추종이요 굴레다. 그래서 약한 것은 속박과 구속이 된다. 무엇이든지 나에게서 이끌어내는 생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반성하고 참회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옷을 입은 당당한 보행일지라도 민초의 눈에는 벌거숭이 왕자가 활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동안 사회적인 불안이 경제에 겹쳐지는 것도 인위적인 목숨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모두 숨을 제대로 쉬지 않는다는 측면이 크다. 이미 국민들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국기문란 요직들의 다음을 주목하고 있다. 대의(大義)를 속이고 자유로울 수 있다면 이는 결코 옳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의에 귀의하는 것이 목숨의 참모습이다.

옳은 일을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 이를 제도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장치가 의회민주주의라면 의회 지도자의 생명관부터 신뢰가 가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과 사실을 책임져야 할 지도층이 굴종과 의구심으로 자강적 노력을 다하지 못한다면 희망과 결실의 시간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확고부동한 국익의 명줄은 우왕좌왕하는 지도자의 손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기회가 없고 시간이 없으며 그리고 장벽으로 둘러싸인 세계가 더없이 지난하다는 것은 쉽게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총체적 단결이 앞서야 하고 의회지도자의 정략과 당략이 대의적 명분을 생명 시 할 때 사회적 불안을 씻어낼 수 있다.

폭력과 억압이 진리가 아니듯 제도적 장벽 또한 그것이 옳은 일을 다 하지 못할 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참에 가속화되는 국민의 한 목소리 내기가 있다면 우리의 앞날은 더욱 창창할 것이다. 무엇보다 핵을 보유하지 못해 불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뭉치지 못하는 단점을 직시해야 한다. 아집과 소아적 편승에 정신을 잃는 폐단이 결코 역사의 단면에만 있지 않다. 반목을 일으키는 과오의 역사는 차원 높은 정사(正史)에 붙여야만 더 심한 악순환을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국가 안보상 핵의 균형이 시급한데도 우리들은 국제핵협약(IAEA)에 억눌리고만 있다. 우리의 항공우주개발 실력이 미천한 것이 아니고 아리랑호의 지속적 개발은 핵기술의 자산이 된다. 단지 이를 경시하거나 긍정적 자아를 일으키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 정치권은 목숨과 생명이 찰나냐 영원이냐를 두고 대오각성 할 때다. 뭉치기만 하면 선순위 국가 예산편성에 박차를 가해 핵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국제장벽도 열렬한 구국적 단합으로 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 목적은 살아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국익과 부강과 그리고 경제·복지의 기틀은 오히려 무궁무진한 생명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날숨과 들숨으로 이뤄진 호흡은 누구나 하고 산다. 하지만 숨쉬기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이 천혜의 혜택을 혜안으로 보는 국민이라면 미래는 결코 좌절이 될 수 없다. 참회와 반성이 앞선 리더십의 건강한 호흡을 국민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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