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매주 거제신문 완성의 마침표를 찍어온 정둘이씨

띠지란 신문을 우편으로 보내기 위해 신문을 싸는 종이를 칭하는 말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해 신문을 구성하고 편집하면 인쇄소에서 신문을 인쇄해 온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이 띠지에 신문을 꽂아 우체국으로 보낸다. 앞선 일련의 작업이 다 이뤄져야만 독자들이 거제신문을 받아볼 수 있다.

가정주부이면서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정둘이씨(58·고현동)는 거제신문과 15년의 인연을 갖고 있다. 인쇄돼 온 매호의 첫 신문뭉치의 비닐을 벗기고 띠지작업을 하며 거제신문을 만나고 있다.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신문의 발행일이 변경되고 인쇄소가 바뀌면서 작업시간대도 새벽, 초저녁, 늦은 밤까지 수차례 변경됐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작업에 임하는 정씨가 있어 거제신문은 독자에게 전달된다.

현재 5명의 인원으로 분업해 일을 하고 있다는 정씨는 "우리가 매호 첫 독자가 되는 셈이다. 어디 가서 거제신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정감이 간다는 말이다"며 "거제신문 기자들이 열심히 뛰어서 만든 신문을 우리가 마지막 작업을 해 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5년을 해 오면서 생긴 돈이 나의 옷이 돼 줬고, 아이들의 용돈이 돼 줬다. 그 동안 1남3녀의 자녀가 성장해 시집·장가를 다 갔다"면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작업이지만 거제신문이 내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평했다.

정씨는 "작업을 하는 것이 어떻게 편하고 좋기만 했겠는가.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가신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아팠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령이 붙고 익숙해진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 있기에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며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거제신문에서 그만두라는 소리만 안 하면 70세 아니 80세까지 하고 싶다고들 말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정씨는 또 "한 번은 신문 인쇄가 잘못 나와 모든 신문사 직원들이 수정작업을 한 적이 있다. 밤을 새워 가면서 기자들이 수정을 하고 우리도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거제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나도 참여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 것 같다"며 "내가 하는 일이 단순한 작업일지는 모르지만 작업을 하기 전 배달된 신문의 첫 봉투를 뜯으면서 신문이 잘 나왔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는 일은 한 식구가 아니면 가지지 못할 생각"이라고 자부했다.

2년 전 거제신문 직원들과 함께한 경주여행과 담양에서 열린 바른지역언론연대 행사에 참여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실리는 것이 신문이라고 생각한다. 거제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 거제신문일 것이다. 지난 27년 동안 지역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 왔듯이 앞으로도 열심히 해 거제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계속 남아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평소 생활신조가 '열심히 일하자' 라고 말하는 정씨는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고 노래교실에 가서 노래도 열심히 부른다. 항상 긍정적으로 젊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주위에서도 내 나이를 알면 놀란다"면서 "더욱 열심히 해서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 조금이라도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라는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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