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기/ '문장21' 시 등단

 물고기의 등지느러미에
 천년을 매달며 바람의 언어로
 맑은 풍경 소리를 우려낸다
 삶의 좌표를 점령한 허공
 파리한 죽림사*풍경 소리
 번뇌를 나지막이 해탈시킨다
 간밤 슬픈 울대를 가진
 소쩍새가 울다 지친
 회나무 가지에 속절없이 노숙한
 풍경 소리 여전히 청아하다
 처마 끝 어디에 맴돌고 있는
 끈끈한 인연의 고리 마냥
 덧없이 흐르는 세월을 옭아매고
 물고기의 부레 속을 빠르게 스친다
 끝내지 못한 인연으로
 연못에 끓인 물수제비를 먹으며
 뭇사람의 귀를 지나 깨달음을 얻는다

*죽림사: 서기 809년 신라 헌덕왕 1년 창건된 영천시 봉죽리에 있는 천년고찰 

·시 읽기: 종합문예지 '문장21' 통권29호(2015, 여름호)에 실린 시이다. 평범한 독자는 난해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각적 이미지를 많이 장치한 시는 난해하게 읽히기도 한다. 1~3행의 '물고기의 등지느러미에/ 천년을 매달며 바람의 언어로/ 맑은 풍경 소리를 우려낸다'만 읽고 더 읽기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읽다 보면 그림처럼 이미지가 펼쳐질 것이다. 시적 화자는 죽림사의 풍경 소리를 듣고 있다. 이 풍경 소리를 통해 번뇌를 해탈하고, 인연의 귀중함을 깨닫는다. 이처럼 고즈넉한 산사를 찾아 풍경 소리를 듣다 보면, 삶의 의미를 하나쯤 길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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