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화 / 201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매향골 텃밭에서 택배로 온
 푸대자루 틈을 뚫고 나온 무 꽃대

 그녀는 한때 아름다운 꽃이었다
 십리마을 매화꽃이었다가
 건너 산비탈에 흩뿌린 배꽃이었다가
 호명하며, 따라다녔지만
 정작 그녀가 꽃이 된 적은 없었다
 
 어느 날 스스로 꽃으로 된 허물 벗어
 단단한 푸대 속에 묻어 놓고 왔다
 
 꽃은 그렇게 그녀 곁에서 멀어져 간 줄 알았는데
 흙 묻은 몸 꽃대 하나
 저리도 숭고하게 밀어올리고 있었구나
 벼랑 끝에 선 보랏빛 미소들이 환하다
 
 꽃은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었나
 새로 얻어 온 허물에도 흙은 묻어
 온몸이 푸석하다

·시 읽기: 종합문예지 '문장21' 통권29호(2015, 여름호)에 실린 시이다. 모든 시가 그렇듯 읽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시적 진실성, 상상력, 통찰력 때문이다. 시인의 시작노트를 그대로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美花. 그가 떠나고 이름이 거추장스러워졌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꼬리표처럼 달고 살까도 생각했지만, 세 아이들과 나아가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나는 과감히 꽃을 꺾어 강에 뿌리고 새로운 이름을 얻어왔다. 美和. 그러고 다시는 내 몸에 꽃을 두르지 않겠다고, 꽃을 모른다고 외면하며 앞만 보고 살아왔다. 어느 날 베란다 문을 여는데 푸대자루 틈 사이로 빼꼼 내다보는 보랏빛 무 꽃대 하나. 아, 숨이 막히고 명치끝이 아려온다. 꽃이 아직 내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니. 이처럼 시인은 무 꽃대 하나를 통해 자아를 발견한다. 우리 모두 자아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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