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인 / 시인·수필가

 기별도 없이
 담장 화사하다
 
 빗장 열지 않아도
 들어온 바람
 
 그리움은
 이미 내 것이 아니네
 
 후두둑
 싸늘한 낙화
 
 봄도 어느새
 봄이 아니네
 
 모두가
 꿈이었네

·시 읽기: 종합문예지 '문장21' 통권29호(2015·여름호)에 실린 시이다. 이 시는 물아일체의 이미지이다. 봄이 아무도 모르게 시나브로 다가오지만, 금방 떠나버리는 자연현상임을 묘사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어느새 봄이 '기별도 없이' 다가와서 담장을 화사하게 꾸며 놓았다고 표현한다. 담장 위 가지를 드리운 목련 나무의 가지 마디마다 꽃봉오리가 튼튼한 빗장을 걸고 있다. 그런데 봄바람은 철갑 같은 그 빗장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목련의 깊은 잠을 깨운다. 이때 시적 화자는 오랜 시간 동안 봄을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그 봄을 기다리던 '그리움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고 깨닫는다. 마침 목련꽃은 '후두둑'거리며 싸늘하게 낙화한다. 어느새 목련꽃이 낙화하듯 봄도 '봄이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 이미 봄은 멀리 떠나버린다. 결국 '모두가/ 꿈이었네'라며 깨닫는다. 이처럼 정 시인은 계절의 순환과 자연을 통해 인생사 모든 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임을 장치해 놓았다. 즉 목련을 통해 한바탕 봄꿈을 꾸었으나, 모두 헛된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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