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걸/ 문장21 편집 고문·전 동의대학교 국문과 교수

저승에 두고 온 만연萬緣이
피멍으로 가라앉은 화덕에
한 아름
마른 솔가리를 지폈다
태양도 목말라 돌아누운 대낮
진흙 밟고 승천하는
욕진의 번뇌
네 아픔은
곧 내 아픔이려니
인과의 탁한 물속에서
혼절하는 꽃이여

·시 읽기: 시인의 처녀 시집 '내부로 흔들리는 꽃'(1979)에 실린 시이다. 연꽃은 "태양도 목말라 돌아누운" 한여름 푹푹 찌는 찜통더위 대낮에 더러운 연못의 진흙 속에서 생명을 얻어 태어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수면 위로 우뚝 솟아올라 맑고 깨끗하게 피어난다. 이것은 연꽃의 순결성을 상징하는 전통적 상징이다. 여기서 연꽃의 순결함은 유교적 군자의 상징이요, 불교적 극락세계의 상징인 것이다.
 시적 화자는 '진흙 밟고 승천하는' 연꽃처럼 더럽고 추한 곳을 딛고 우뚝 솟아나 순결함을 풍기며 만개(승천)하기를 소원한다. '네 아픔은/ 곧 내 아픔이려니'라며 '연꽃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이라고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 순결한 '연꽃'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서서 맑고 깨끗한 꽃의 군자가 되고 극락세계로의 승천을 꿈꾸듯, 시적 화자도 속세의 '욕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순결함을 간직한 군자와 같은 삶과 석가모니와 같은 극락세계로의 승천을 꿈꾼다. 또한 '인과의 탁한 물속에서/ 혼절하는 꽃이여'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인과의 탁한 물속'에서의 인고의 삶, 즉 온갖 '번뇌'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초극의 삶을 표상한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