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조용한 포구인 장목면 시방마을 해변이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했다. 흥겨운 우리가락과 마을가득 울려 퍼지는 힘찬 함성에 어깨가 절로 움직였다. 거제의 전통 민속예술을 시연하는 공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거제시전통민속예술단체협의회(회장 전화숙)의 주최로 열린 이날 공연은 거제의 전통예술인 살방개방소리(회장 강병태)가 주관하고, 팔랑개어장놀이(회장 강영봉)와 전래민요 강강술래(회장 김점래)가 협찬해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7월 백중놀이 때 있을 민속경연과 10월에 있을 국화축제 정기 공연을 대비한 시연행사는 거제의 역사와 삶이 서려있는 전통 민속예술을 한자리에서 본다는 큰 의미가 있었다.

시연에 앞서 거제수산 별신굿 기능보유자 김현숙씨의 살풀이춤과 경기민요 보존회의 민요 열창이 초여름 해안을 수놓았다.

지난 22일 장목면 시방마을서 팔랑개어장놀이·살방깨발소리·전래민요 시연 공연 펼쳐져
투박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흥겨운 전통공연에 어깨춤이 절로…해학적 요소에 웃음까지

아녀자들아, 굴 까러 가세다

살방깨발소리는 아낙네들이 바닷가에 자생하는 해산물을 채취하며 부른 민요로 그 수가 390여 곡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악보화 할 수 있는 노래만 60여 곡에 달한다. 거제 토속민요는 각 마을마다 그 특색이 어우러진 소리가 많이 불리고 있다.

시방마을의 옛 이름인 '살방'은 포구와 해변의 모양이 활처럼 휘어져 남동쪽 등성이에 있는 이수도를 향해 활을 쏘는 형상이라 해 붙은 지명이다.

여기에 패류·해초류 등을 채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거제도방언인 '깨발'을 더했고 토속적인 특색을 살려 '살방깨방소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연이 시작되자 마을에서 어른격인 어르신이 노래를 부르며 다른 아녀자에게 굴을 까러 가자고 재촉했다. 하나둘 모여 자리를 잡은 공연단은 설치된 갯바위 위에 올라 굴을 따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소리를 하는 어르신들도 굴을 따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지만 건강문제로 의자에 앉거나 서서 노래를 불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노랫말은 주로 춘궁기와 같은 힘든 시절 아낙네들이 바닷가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과정을 그렸다.

투박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흥겹다. 궁핍한 현실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려 한 옛 선인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다 오이라 조개 부르러 가자

전래민요에서는 거제강강술래가 시연됐다. 강강술래는 남해안 섬지방에 전승되는 전래 세시명절 놀이로 '노래와 무용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의 놀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우수영에 진을 치고 적군에 비해 아군의 수가 적어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정차림을 하게하고 옥매산 허리에서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빙빙 돌도록 한데서 관행돼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시연된 거제강강술래는 조개 부르기를 시작으로 둘째 판 강강술래, 고사리 끊자(꺾기), 청어엮기, 지애(기와)밟기, 대문열기, 달구새끼 떼어보세, 덕석몰기, 덕석풀기, 강강술래 등 모두 열한 번째 판으로 구성됐다.

"다 오이라. 조개 부르러 가자" 매김소리와 함께 첫째 판인 조개 부르기가 시작됐다. 둘째 판 강강술래는 중모리 장단으로 시작해 자진모리 장단으로 이어지면서 공연자들이 원을 만들며 빙빙 돌았다. 넷째 판 청어엮기에서는 한 바퀴 돌 때까지 청어를 엮어가다 다섯 째 판에서 선창과 후창을 주고받으며 청어를 다시 풀었다. 여섯째 판 지애밟기에서는 허리를 구부린 동료들의 등을 밟고 걷는 모습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판은 다시 한 번 강강술래를 하며 원을 만드는 모습으로 마무리됐다.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무사안녕과 만선을 기원합니다

팔랑개어장놀이는 옥포동 팔랑포 마을에서 풍어를 빌며 마을 공동으로 고기잡이하는 세시풍속놀이로 예부터 이 지방에서 내려오는 배신굿과 풍신제를 변형한 독특한 민속놀이 마당이다.

팔랑포는 임진란 때 첫 승첩을 거둔 옥포만 동북쪽에 자리한 전형적인 조그마한 어촌마을로 잔잔한 물결이 팔랑거린다 해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옥포대첩 때 패전한 일본병사 여덟 명이 도망가 편안히 보낸 마을이라 해서 팔안포라 하는 이야기도 구전설화로 전해진다.

조선 태조 1년(1392년)에 능포를 중심으로 옥포(파랑포) 등 포구에서 임금님께 진상을 올리는 궁조어장으로 지정돼 신성한 고기(대구·청어)를 잡을 때 어부들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목적에서 팔랑개어장놀이가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다 형태가 차츰 사라지고 있던 차에 해방과 더불어 현존해 있는 노인들이 옛 선인들의 멋을 이어왔다. 여러 향토사학자들의 도움과 일상 어로작업을 고증·채록을 통해 거제문화원과 풍물놀이가락 회원이 1992년 팔랑개어장놀이 민속보존회를 결성해 사라져 가는 거제시의 민속놀이인 팔랑개어장놀이를 발굴·보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날 펼쳐진 팔랑개어장놀이는 질굿마당·도리깨마당·용왕제·그물소리·가레마당·만선 한마당 순으로 진행됐다.

메구패의 장구소리가 장단을 내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바늘이나 도리깨를 들고 하나 둘 행렬에 가담했다. 메구패를 따라 사람들은 선창가로 이동했다. 선주와 그의 부인이 분주하게 술과 음식을 준비하며 사람들을 맞았다. 질굿마당이다.

놀이의 구성에서 아낙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예부터 남정네들이 바다로 나가 풍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녀자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리깨마당에서는 그물을 넓게 펼쳐 찢어진 곳을 바늘로 꿰메고 도리깨로 이물질을 털어내는 작업을 했다. 수선된 그물은 어구와 함께 배에 싣는 동안 메구패는 연풍제 장단에 맞춰 '때려라', '쳐라'를 외치며 흥을 돋웠다. 어구를 배에 실은 후 어부들은 용왕제를 올리며 무사안녕과 만선을 빌었다. 제가 끝나면 출항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배를 출항 시키는 모습을 연출했다. 메구패는 쇠가락과 장구를 신명나게 두드리며 한마당을 벌였다.

넷째 마당인 그물소리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넓게 펼쳐 고기를 잡으며 풍어가를 불렀다.  마지막 만선마당에서는 가레를 이용해 그물에 잡힌 고기를 퍼 올리며 소리를 뽑았다. 공연단은 어깨춤을 추고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열정적인 시연을 마친 공연단에게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파란 눈의 외국인들도 '브라보'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신 훔치는 공연자들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거제의 소중한 문화유산의 맥을 이어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 시민들의 관심어린 시선이 모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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