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신비 가득한, 그 섬에 가고싶다

신이 사랑한 섬, 지심도

지난 18일 오후 2시.

거제시 일운면에 위치한 지심도로 향하는 작은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장승포항의 비경을 뒤로 하고 선장은 뱃머리를 지심도로 향하기 시작했다.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 며칠째 계속되는 한파로 몸과 마음은 모두 얼어붙었고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쉽사리 눈 안으로 들어오진 않을 것 같았다. 배 안은 한적했다. 평일 오후인데다 매섭게 기승을 부리는 추위 탓도 있으리라.

안내를 해주던 한려해상동부사무소 직원 차수민 씨는 “지난 1박 2일 거제도 편에 지심도가 나온 뒤로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습니다. 오늘은 추위 때문에 인파가 좀 한적하지만 올 여름에만 해도 주말이면 연인, 가족단위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뤘죠”라고 살짝 귀띔해 주었다.

장승포항에서 지심도로 향하는 여객선의 운행시간은 약 25분. 창 너머 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바다는 보석을 뿌려놓은 듯 반짝였으며 깎아놓은 듯 한 바다 위 절벽의 위풍당당함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뱃길이 열어주는 눈부신 풍경들에 얼마쯤 취해 있었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고정되기 시작했다. 그때, 저만치 압도적인 모습의 섬 하나가 시야에 나타났다. 바로 지심도였다.

사람의 마음을 담은 곳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숨 막히는 태초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림이었고 셔터를 누르는 한 컷 한 컷이 작품이 됐다. 그만큼 지심도는 아름다웠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천승환 팀장의 안내로 길게 이어진 오솔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투명하게 고드름이 얼어 바위벽에 송골송골 열려 있었다. 함께 배를 타고 왔던 한 남자가 고드름을 떼 내어 친구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내 칼을 받아랏!”
“윽!”

지심도 오솔길의 첫 길목에서 만난 고드름은 30대 남자 두 명을 순식간에 어린아이들로 바꿔놓았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한 배를 타고 왔던 낯선 모든 이들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올랐다.

“지심도의 뜻을 아십니까?”

천승환 팀장의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대답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짓던 천 팀장은 말을 이어 갔다.

“지심도란, 마음을 담은 섬이라는 뜻입니다.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심도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지심도 곳곳의 지명은 그냥 붙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 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 지심도를 마음에 담아가길 바라며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푸르름의 숨결로 빚어낸 듯 한 오솔길, 거친 파도가 세월을 수공한 가파른 절벽의 해안, 듬성듬성 붉은 꽃송이가 쌓인 동백숲 터널,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상록수에 둘러싸인 아담한 농가, 한줄기 햇살도 허락하지 않는 울창한 상록수림, 끊임없이 들려오는 동박새와 작박구리의 노랫소리까지.

태초와 현대가 공존하는 지심도는 옮기는 걸음걸음마다 그야말로 신비한 자연의 처음 얼굴과 오랜 숨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섬이었다.

슬픈 역사의 노랫가락이 그곳에

한참 걸음을 옮기던 천승환 팀장이 어느 한 지점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작스레 진지해진 그의 모습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소란도 잦아들었다.

“지심도는 뼈아픈 우리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36년 한일 합방이 되면서 주민들이 강제 이주를 하게 됐고 그 이후 일본 요새로서 1개 중대가 광복 진전까지 주둔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곳이 일본군이 해안 방어 목적으로 만든 포대 자리랍니다.”

천팀장이 가리킨 곳에는 지름 5미터 정도의 원형으로 된 포대 터가 있었다. 당시 만들어진 포는 360도 회전을 할 수 있고 방향은 부산과 대마도를 향하게 설치해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포대 바로 옆에는 탄약을 준비해 놓는 탄약고도 함께 만들어져 있었다. 탄약고의 모습은 방금 만들어 논 건물처럼 여전히 견고하기 짝이 없었다. 문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의 녹슨 철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지만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은 단단했으며 균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본의 건축기술은 그 당시에도 무척 뛰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가슴 아픈 역사지만 상처의 흔적을 덮어두기 보단 잘 보존해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로 마련하는 것도 좋은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수려한 자연환경 속 아픈 역사를 품고…

7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견고한 포 자리와 탄약고를 보는 동안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듯 귓가에는 생생한 대포 소리와 일본군의 외침이 들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숙연해진 마음을 안고 동백섬을 나와 장승포항으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문득 돌아본 그곳에는 방금 떠나온 동백섬이 있었다.

눈부신 아름다움과 가슴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한려수도를 대표하는 관광명지로 다시 도약하는 지심도가 그곳에 있었다.

지심도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 딸린 섬으로 면적 0.356㎢, 해안선길이 3.7㎞, 최고점 97m, 인구는 약 28명이다. 일명 동백섬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현종 때 주민 15세대가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군의 요새로서 일본군 1개 중대가 광복 직전까지 주둔했었다.
멀리서 보면 군함의 형태를 닮았고 남해안에는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다. 내륙의 평탄한 능선지대에 마을이 형성돼 있고, 마을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며 멸치잡이 및 김·미역·굴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섬 전역에 걸쳐 후박나무·소나무·유자나무·동백나무 등 37종에 이르는 수목과 식물들이 자라는데, 전체 면적의 60∼70%를 동백나무가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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