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칼럼위원

▲천창수 송진교회 목사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에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가사가 있다. 정말 그렇다. 진짜 같은 가짜가 얼마나 많은지, 어느 게 진짜고 어느 게 가짜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분명하게 분별해야 할 것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믿음을 자랑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 이제 점검해 보아야 한다.

바울사도는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성경전체의 가르침이다. 성경은 우리가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한다. 심지어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 니라”고 까지 말씀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성경이 서로 모순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바울과 야고보의 가르침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바울 사도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구원의 방법에 대한 교훈을 준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였다. 내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내 공로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구원받았다. 바울은 바로 우리가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믿음의 정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참 믿음과 거짓믿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야고보서를 통해 배우는 참된 믿음은 무엇인가? 참 믿음은 행함이 있는 신앙이다. 행함으로 증명되는 신앙이다. 참된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라는 것이다.

야고보서 2:18에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했다.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참된 믿음은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다.

믿음은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무게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또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라서, 누구나 다 믿음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믿음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야고보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고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보이며 살아야 한다. 삶의 태도를 통해 믿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은 칼로리와 같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결과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믿음을 볼 수는 없어도 믿음의 결과는 볼 수 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했다. 내가 이것이 사과나무인지 배나무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열매를 보면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다. 사과가 열렸으면 사과나무고 배가 열렸으면 배나무인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내가 믿기로는 건강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한 것 이지요”라고 말하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운동을 하거나 식사조절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건강이 중요하다는 그 말은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행하느냐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행함을 통해 증명된다. 야고보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고 말한다. 참된 믿음은 보여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강조했던 바울 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울도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할 때는 그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갈5:6에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 했다. 롬1:5에서는 “믿어 순종하게” 한다고 했다. 결국 바울 사도도 믿음의 정의를 내릴 때는 ‘사랑으로써 나타나는 믿음’ ‘순종이 따르는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며 살아온 우리는 과연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이며 살고 있는가? 사랑으로서든, 순종으로서든 이제 우리의 믿음을 보이는 일에 신경 쓰며 살도록 하자. 말뿐인 믿음, 아는 것에만 그치는 믿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참된 믿음은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행동은 말보다 훨씬 크게 말한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제 믿음을 보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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