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 거제수필문학 회원

2010년에 완공예정인 거가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거제 장목면에서 10시 방향으로 차를 몰고 농소 바닷가를 거쳐 거가대교의 거제 끝부분인 유호리 상유부락 해안가의 낭떠러지 위에 거제시에서 만들어 놓은 전망대가 있다. 여기에 오르면 거가대교의 건설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5공화국시절까지 대통령 별장으로 즐겨 사용되었던 저도가 흉물스럽게 파헤쳐진 모습이다.

눈을 약간 들어 수평선 쪽을 돌리면 어부들이 고기잡이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흰니섬이 보인다. ‘니’란 파도를 뜻하는 사투리임으로 ‘하얀파도섬’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되는 이 섬은 부산의 오륙도와 비슷하다. 단지 흰니섬의 주봉이 크고 갈매기의 배설물로 섬이 희고 옆으로 퍼진 차이 뿐이다. 고개를 들어 자세히 쳐다보면 멀리 가덕도 등대가 보인다. 등대 밑의 바다, 동머리 끝에는 거제사람들이 여객선을 타고 부산가다 제일 많이 멀미하는 파도가 심한 곳이다.

다시 고개를 숙여 아래를 쳐다 보면 작지만 검은 몽돌개가 있다. 이곳을 동네 사람들은 ‘파래올’이라 부른다. 동네 사람들에게 그 유래를 물어도 명쾌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파래가 많이 나는 곳’이 아닐까 하고 유추하였는데, 그것은 현실과 너무 떨어진다. 파래는 파도가 심하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은 위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자갈밭이 보이지 않아 다른 수석인들은 모르고 나를 포함한 세 명 만이 찾던 곳이었다. 이곳의 돌은 완벽하게 파도에 마모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씻김이 적은 것도 아니다, 바다돌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변화가 있고 무엇보다 색감이 검다는 장점이 있다. 간혹 너울이 심한 뒤에 씻김이 좋고 색감이 좋은 수석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들은 허리춤까지 물을 적시면서 물밑을 쳐다보곤 하였다.

이제 수석 채집은 접고 여행을 즐겨 다니고 있지만, 십여 년 전인 그 때에는 태풍이 몰아치면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지세우고 새벽같이 탐석의 길을 나서기 일쑤였다. 유난히 태풍이 잦았던 그 해, 태풍만큼이나 바람이 세게 불고 간 그 날,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10킬로미터 떨어진 파래올을 향하여 걸었다.

분명 파도에 의해 파래올의 자갈밭은 뒤집혀졌을 것이며, 멀리 있었거나 속에 감춰져 있던 새 돌들이 나타났을 것이고, 또 다른 두 사람 보다 먼저 도착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큰길가에서 파래올 해안가로 산비탈을 나뭇가지를 잡고서 내려가고 있을 때 인기척이 났다. 오랜 친구로서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벌써 한명이 먼저 도착해서 어둠이 가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바람의 뒤끝이라 아직도 너울이 심하다. 동산 위로 하얀 이빨을 내밀며 솟구쳐 오르는 파도를 향해 두 사람은 자갈을 던지면서 여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탐석의 벗이라도 현장에서는 좋은 돌을 먼저 찾아야 하는 일종의 경쟁자임이 분명하다.

이때는 친구의 존재가 거추장스럽고 미워지기까지 한다. 어둠이 물러가자 팬티 바람으로 바닷가를 헤맸다. 파도의 아름다운 선물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서로 열심히 자갈밭을 누볐다. 잠간 쉬는 동안 나는 갈매기가 모여 날고 있는 흰니섬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연분홍의 아침 햇살을 받고 좌우로 정렬한 모습을 감탄하다가 거센 파도에 의해 내동그라지는 한 개의 검은 돌이 눈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밀려드는 파도 속에 솟구쳐 오르는 그 돌을 보고 직감적으로 몸을 날렸다.

파도에 따라 내려가는 돌을 줍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다시 한 무더기의 파도가 나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 돌만은 꼭 붙잡고 헤엄쳤다. 언듯 본 것과는 달리 돌이 제법 크다. 돌의 무게와 파도 때문에 헤엄이 불가능하다. 발끝으로 서 보았지만 이미 머리는 물속에 있고 돌은 무거워 몸이 뜨지 않는다. 난감하다. ‘포기해야 하나? 옳지, 바다 속을 잠수부처럼 걸어가자.’

순발력 있게 대처한 나는 숨을 쉬지 않고 걸었다. 다행이 파도가 떠밀어 준다. 떠밀려 나온 나를 본 친구는 오히려 나 보다 더 질려 있었다. 옆의 친구도 감탄할 정도로 너무나 잘 생기고 멋진 돌이었다. 그 순간, 좋아서 죽겠다는 듯이 돌을 안고 뒤로 드러누웠다. 얼마 후 친구의 존재를 느꼈고 조금 전까지의 위험이 그제서야 몸서리쳐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돌을 몇 번이나 닦으며 감상하였는데, 그의 이름을 파도가 오면서 솟구쳐 오르게 한 돌이라 나만의 한문 ‘波來兀 (파래올, 파도가 오면서 솟구쳐 오르게 하다)’이라 붙였다. 결국 그 돌은 퇴임한 세무서장에게 당시의 제법 큰 금액으로 팔아 아내 몰래 긴요한 용돈으로 쓰였다.

거제도 안팎을 여행하다 보면 옛날 수석 채집하던 때의 추억이 깃든 곳을 지날 때가 많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런 추억에 한동안 잠겨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제 내가 가진 수석은 한창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파래올’처럼 팔린 것은 몇 점 되지 못하고 대부분 지인들에게 한 점, 두 점 나누어 주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남아 있는 것들을 물론 사랑하고 아낀다. 그러나 어찌 영원히 나의 소유일 수 있겠는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로 가고, 또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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