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칠 화평교회 담임목사

“boys, be ambitious!”

1877년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으로 왔던 미국인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한 말입니다. 이것이 불씨가 되었던가!

그로부터 30여년 후, 일본은 한국을 그들의 꿈속에 넣고 말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니 아찔한 말이기도 합니다만 젊은이들에게 꿈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신의 소질이 어디에 있는지 개발을 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어떤 이는 유치원에나 들어갈 어린 나이에 벌써 청운의 꿈을 품고 외국으로 떠난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스무 여덟에야 이 꿈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친 이가 있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불혹의 나이인 마흔이 지나도 꿈을 발견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이들까지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꿈은 꿈만큼이나 잡기가 어려운가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찾기 어려운 꿈을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지명 받아 타고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성탄계절의 주인공 되신 예수님이 그분이십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장에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님의 어머니 될 마리아에게 찾아와서 ‘네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게 될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면서 그 아이는 장차 “큰 자가 되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며…(나아가서 그는)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한 예언이 바로 그 말입니다.

야곱의 집을 다스리실 일! 그 일이 바로 예수님이 하실 일이었단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은 둘입니다. 처음이름은 야곱이지만 나중 이름은 이스라엘이었는데 여기서 천사는 이스라엘의 집을 다스릴 예수가 아니라 야곱의 집을 다스릴 예수라고 한 것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닌 특별한 뜻이 있어 붙여진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이스라엘과 같은 사람이 아닌 야곱과 같은 사람을 찾아 다스리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야곱과 같은 사람 곧 야곱처럼 선천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자로 태어난 불행한 사람 말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말하기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이 바로 선천적으로 야곱 같은 사람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다스려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려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셨단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후천적으로도 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선천적인 불구를 만회해 보려고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죄로 20여년이나 타향에 가서 피신해 살아야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 주위에는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던 세리와 죄인들이 참으로 많았고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이야기 하지 못할 부끄러움이 있는 모든 사람이 또한 야곱 같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죄와 부끄러움으로 뒤덮여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사람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오셨고 그 일을 위해서 십자가까지 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가상한 뜻이 있었기에 그 뜻을 높이 기리며 우리 또한 그 가상한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에 성탄을 성대히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곱의 집이여! 당신의 집을 다스리러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축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우려고 오신 분의 의도대로 세움 받게 되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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