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배 칼럼위원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言語)에는 표준어와 방언(方言·사투리)이 있다. 그 어의(語義)를 사전적(辭典的)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표준어란 한 나라의 규범이 되는 말로 인정된 것이다. 즉 한 나라의 말에는 방언을 비롯한 변종(變種)된 말들이 있어 국민 서로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생김으로써 한 국가로서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 모든 국민이 지키고 따르도록 정한 말이다.

방언이란 표준어와 구분되는 특정 지역의 독특한 단어나 언어적 용법으로 흔히 사투리라 부르는 것으로서 지역이나 사회적 계층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한 언어의 분화체(分化體)를 말한다.

그러나 언어학 내지 방언학에서는 방언이라고 해서 표준어 보다 못하다든지 세련되지 않은 것이라는 등의 어떤 나쁜 평가를 동반한 의미를 가지지 않고, 단지 한 언어를 형성하고 있는 하위단위로서의 언어체계 전반을 곧 방언(이하 사투리라 함)이라 하여 각 지방의 말 하나하나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사투리를 아끼는 ‘탯말두레’ 회원들은 사투리는 어머니와 고향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하다는 뜻에서 ‘탯말’이라고까지 이름지어 쓰고 있으며, 이들은 탯말을 ’우리 언어와 국어의 제대혈(臍帶血·태반이나 탯줄에 들어 있는 피)’이라고 하면서 사투리에는 고유의 삶과 정서, 역사와 관습이 오롯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투리는 표준어로는 결코 그 분위기와 말의 맛을 제대로 재현할 수 없는, 은근하면서 해학적이고, 생생하며 감칠맛이 나서 그 지방 사람끼리의 친근감을 줄뿐 아니라, 그 속에는 우리네 삶의 내력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언어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어느 유력한 주간지에서 전라·경상도 ‘탯말 독해’ 부분 중 각각 25개를 추려 모았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그 중 ‘경상도 우리 탯말(지방방언)’이라고 소개된 문항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배네끼 오라고 글키나 캐도 기꾸도 안 하네. 배삐 안 올 끼가.(빨리 오라고 그렇게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네, 빨리 안 올 거가.)” ②“가는 시부적 와 가꼬는 지 단도리 다 해가꼬 가네.(그 애는 슬며시 와서는 자기 챙길 거 다 챙겨 가네.)” ③“이 주리 세어 줄까예? 참 기사님이 준 거라서 안 세알리도 되지예.(이 거스름돈 세어 드릴까요? 참 기사님이 준 것이라 안 세어도 되죠.)”

이 문항들 안에 경상도 사투리라고 섞어 쓴 말들 중에서 ①항의 ‘기꾸’ ②항의 ‘단도리’와 ③항의 ‘주리’는 우리의 사투리가 아니라 분명히 일본말이다.

‘기꾸’는 ‘利く(kiku)’로서 ‘말을 잘 듣다’라는 뜻이고, ‘단도리’는 ‘段取り(dandori)’로서 ‘일의 진행 순서·절차·방도’ 등의 뜻이며, ‘주리’는 ‘釣り錢(tsurisen)’의 준말로 ‘거스름돈’이라는 일본말들이다. 적어도 공신력 있는 유명 잡지라면 이 말들은 일본말이라는 귀띔 정도는 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뜻밖에 일본말을 많이 섞어 쓰고있다.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대중매체에서조차 예사로 일본말을 쓰고 있다. 심지어 유명 일간신문의 칼럼에서도 ‘무뎃보 서울시장’이라고 칼럼 제목에서 일본말을 쓰고 있었다. ‘무뎃보’란 ‘無鐵砲(muteppo)’로서 ‘앞뒤 생각 없이 무턱대고 하는 모양’이라는 일본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즘 배웠다는 젊은이들조차 우리가 오·남용하고 있는 일본말을 우리의 사투리로 생각하고 있는 층이 이외로 많다는 것이다. 어떻게 일본말을 역사와 전통이 스며있는 우리의 귀중한 언어의 문화유산인 사투리와 혼동할 수 있단 말인가.

일본말도 하나의 외래이다. 외래어를 쓰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공용어로 지정된 외래어라면 그것이 일본말이든 무슨 말이든 상관이 있겠는가마는 적어도 우리가 무심코, 그것도 우리의 사투리인줄로 잘못 알고 쓰고 있는 일본말들을, 그것이 우리말을 말살하려던 일제강점기의 치욕의 잔재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차피 쓴다 해도 그것이 일본말인 것쯤은 알고 써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국민에게 널리 영향을 끼치는 언론매체만이라도 ‘제발 정신 좀 차려 주십사’ 하고 간절히 애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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